올림픽 축구대표팀 선수들이 14일 경기를 마친 뒤 5명의 한국 응원단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임현석 특파원 lhs@donga.com
임현석 카이로 특파원
무거운 표정의 선수들이 라커룸으로 돌아가려 할 무렵 관중석에선 “잘 싸웠어요”라는 한국말이 들렸다. 5명의 한국 교민 응원단이었다. 이날 경기는 원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에 따라 무관중으로 열리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주이집트 한국대사관의 요청에 따라 이집트 정부가 최대 5명까지 관람 허가가 가능하다고 알려왔다. 한국대사관 측은 선착순 모집을 통해 이들 한국 교민에게 관람 기회를 부여했다.
3만 명을 수용하는 관중석에는 이들을 포함해 40여 명밖에 없어 적막감이 감돌았다. 관중석을 채운 사람들은 이집트, 브라질축구협회 관계자들이었다. 이들 가운데 마스크를 쓴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 없었지만 한국 교민들은 방역수칙을 지켜야 한다며 전부 마스크를 착용했다. 주최 측에서 소리 내서 응원해도 괜찮다는 확인을 받은 뒤에야 이들은 경기 내내 열성적인 응원을 펼쳤다.
이들의 환호에 대표팀 선수들은 발걸음을 멈추고 갑자기 한 줄로 길게 늘어섰다. 그러고는 하나, 둘, 셋 구호를 세더니 일제히 고개를 숙였다. 5명뿐인 응원단을 위해서였다. 이들 응원단은 박수로 화답하며 “정말 잘했어요”라고 말했다. 축구 스타 백승호는 동갑내기 팬이라고 밝힌 직장인 김예진 씨(23)에게 경기 중 입었던 유니폼을 선물하기도 했다.
이집트 내에 거주하는 한국인은 800명 정도다. 현지 거주 교민도 있지만 상당수는 아랍어를 배우려는 유학생과 국내 기업 소속으로 파견 온 주재원들이다. 그리운 고국을 떠올릴 만한 행사나 교류가 많지 않은 이들에게 선수들은 감격적인 팬 서비스를 했다. 비록 경기에는 졌지만 만족스러운 얼굴로 경기장을 떠나는 미니 응원단에 승패는 큰 의미가 없어 보였다. 태극전사들이 응원단을 향해 건넨 마지막 인사는 이들에게 영원히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임현석 카이로 특파원 l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