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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볍게 여겼다간 ‘큰코’…우울증·자살 부르는 피부병

입력 | 2020-11-16 14:24:00

아토피·건선, 호전·악화 반복되는 만성질환
외관상 보여 정신적 고통 크고 삶의 질 저하
"완치 어려워 꾸준히 관리하고 치료해야"




직장인 김모(30)씨는 심각한 아토피피부염을 앓고 있다. 잠결에 긁어 진물이 나는 통에 아침에 잠에서 깨면 이불에 피가 묻어 있을 정도다. 화상 환자라는 소문에 휩싸여 우울증까지 겪었다. 피부과를 다니고 민간요법부터 한약 복용까지 안해본 것이 없지만 증상은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했다. 조퇴와 결근을 반복하던 김씨는 결국 직장을 그만뒀다.

고등학생인 이모(17)군은 10살 때 시작된 건선이 전신으로 퍼지며 학교를 1년간 쉬었다. 각질층이 생기면서 갈라지고 찢어지면서 피가 나고 진물이 나는 증상이 반복돼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다. 건선은 신체접촉으로 옮지 않음에도 전염병이라는 편견을 가진 사람들을 대하는 것은 더 큰 고통이다. 평소 목욕탕을 가고 여름에 반팔을 입는 것은 꿈도 못 꾼다.

아토피피부염과 건선은 단순한 피부병이 아닌 면역체계 이상으로 발생하는 만성 질환이다. 두 질환 모두 증상이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는 데다 겉으로 보여지는 모습 때문에 환자의 정신적 고통이 크다. 증상이 악화되면 우울증이 심하게 나타나거나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도 있어 꾸준한 치료와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토피피부염은 유전적 원인으로 면역체계에 이상이 생겨 단백질에 대해 불필요한 면역 반응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한 해 진료받는 환자만 약 90만~100만 명에 달한다. 중등도(중간)및 중증 아토피피부염의 경우 전신에 발진이 생길 수 있고 극심한 가려움, 피부건조증과 갈라짐, 홍반, 진물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건선은 면역체계 이상으로 각질이 두껍게 생겨 피부가 거북이 등껍질처럼 변하는 질환이다. 우리 몸의 면역 세포 중 피부 각질 형성에 영향을 미치는 T세포가 지나치게 활성화 되면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건선 환자는 전 세계적으로 1억2500만 명(국내 약 16만 명)에 달한다. 건선을 오래 앓게 되면 건선성관절염, 포도막염, 염증성 장질환, 심혈관 질환 등 다양한 질환에 노출되기 쉽다.

문제는 아토피피부염과 건선은 심한 정신적 고통을 야기할 수 있고 삶의 질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이다.

중등도 및 중증 아토피피부염 환자는 증상이 주로 눈과 입 주변, 목, 귀 등 얼굴에 집중돼 많은 환자들이 외모에 대한 자신감을 상실해 우울증에 걸리기도 한다. 국민건강보험공단과 대한아토피피부염학회가 2010~2015년 아토피피부염과 정신질환 간 상관관계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아토피피부염이 심한 환자 10명 중 1명은 불안, 우울증, 수면장애 등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건선 환자들은 건선을 ‘죽지 못해 사는 병’이라고 말한다. 대한건선협회가 2016년 건선 환자 467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건선 환자 10명 중 8명은 우울증, 4명은 자살 충동을 느낀다고 답했다. 서울대병원에 따르면 건선 환자들은 주위의 따가운 시선으로 인해 정신질환 발생률이 31~44%에 달한다.

중증 아토피피부염 환자들과 건선 환자들의 정신적 고통은 자살같은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는 것도 문제다.

중증 아토피피부염 환자들은 직장을 다니더라도 조퇴와 결근을 반복하다 결국 일자리를 잃는 경우가 많다. 안정적인 수입원이 없어 치료를 포기하면 증상이 악화되고 사회활동은 더 어려워져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건선 환자도 겉으로 드러나고 심한 각질을 동반하기 때문에 사회생활이 힘들다. 아토피피부염이나 건선을 앓는 청소년 환자들은 학업을 이어가기 어려워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박영립 순천향대부천병원 피부과 교수는 “환자들이 심리적·육체적으로 받을 수 있는 스트레스 지수를 보면 건선과 아토피피부염이 고혈압, 당뇨병보다 더 높다”며 “중증 아토피를 앓는 성인은 말기 암환자들보다 자살을 더 많이 생각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고 말했다. 박창욱 연세대 의대 피부과 교수는 “중증 아토피피부염 환자는 지속적인 가려움과 상처 부위 통증 등으로 쉽게 잠들지 못한다”면서 “수면 부족으로 인한 만성피로는 감정에도 영향을 미쳐 우울증과 자살로 이어지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했다.

아토피피부염과 건선은 완치가 어렵기 때문에 어떻게 꾸준히 관리하고 치료하느냐가 중요하다.

증상이 심하지 않은 아토피피부염 환자는 가려움을 완화하는 항히스타민제제나 스테로이드 처방받을 수 있다. 중증 아토피피부염의 경우 피부염에 관여하는 세포들의 활성화를 억제하는 면역조절제를 사용하거나 자외선 치료를 할 수 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허가된 생물학 제제(살아있는 생물을 재료로 만든 치료제) ‘듀피젠트(주사제)’는 획기적인 중증 아토피피부염 치료제로 주목받고 있다. 듀피젠트는 2주에 한 번 맞아야 하는데 비급여로 처방받으면 1년에 1700만원 이상 들어 ‘그림의 떡’이다. 건강보험을 적용 받아도 개당 최소 43만원 가량을 내야 한다. 정부는 내년부터 건강보험 적용 대상 환자들을 대상으로 듀피젠트 전체 약값의 본인 부담률을 10%(1년에 100만원대 초중반)로 낮추기로 해 환자들의 치료 부담이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건선 치료는 스테로이드 같은 연고를 바르는 국소치료, 특정 자외선을 쪼이는 광선치료, 약을 복용하는 전신 치료, 피부 또는 근육에 주사하는 생물학 제제 등으로 나눠진다. 서울대병원에 따르면 국내 환자의 85%는 제대로된 치료를 받지 않고 있다. 대한건선학회에 따르면 평소 피부가 건조해지는 것을 막고 피부 자극이나 손상, 스트레스와 과로, 음주와 흡연을 피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박 교수는 “아토피피부염과 건선은 관리가 굉장히 중요하다”며 “규칙적으로 생활하고 술과 담배, 스트레스를 최대한 줄여 면역체계를 바로잡고, 기능성 보습제를 충분히 발라 피부막이 손상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