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부 장관 추미애는 장관직이 자기 것인 줄 아는 모양이다. 16일 국회에서 그는 “검찰개혁이 완수되기 전까지 장관직을 내려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에서 서울시장이나 대선 출마 의향이 없느냐고 묻자 “법무부 장관으로서 검찰개혁 사명을 갖고 이 자리에 왔기 때문에 이 일을 마치기 전까진 정치적 입장을 갖고 있지 않다”고 답한 거다.
장관의 직분을 능가하는 답변이다. 지금 자신이 하는 일이 검찰 ‘개혁’이라고 믿는 것도 황당하지만, 장관직을 스스로 내려놓지 않으면 평생 할 수 있는 양 믿는 모습은 더 황당하다.
추미애 법무부장관. 동아일보 DB
● 법무부 욕보이는 추미애의 행태
2020년은 ‘추미애의 난’으로 점철된 한 해였다. 1월 2일 국회 청문보고서 채택 없는 23번째 장관으로 임명된 이래, 그는 정권의 행동대장 역할로 마침내 ‘광인 전략’ 소리까지 듣게 됐다. 추미애 아들의 황제휴가 무마는 이 과정에서 주어진 정권 차원의 보너스라고 본다. 법무부 수장으로서 추미애가 강행한 위법적 행태는 법무부의 수치로 기록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반(反)인권적, 위헌적 휴대전화 비밀번호 해제법까지 밀어붙이자(한발 물러섰다지만 만일 법이 만들어진다면, 추미애의 댓글 조작 고발 같은 자충수가 될 게 뻔하다) 16일 국민의힘 대변인들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추미애 해임을 촉구했다.
그래도 추미애는 마스크 줄 하나 흔들리지 않는다. “장관직을 내려놓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 것도 문 대통령이 결코 자기를 해임 못할 것으로 확신하기 때문일 터다. 청와대가 최근 개각작업에 착수했다지만 그의 자리는 굳건한 눈치다. 하긴 어떤 제 정신 가진 사람이 추미애처럼 광인 전략을 불사할 것이며, 그 뒤처리를 할 사람은 어디 있겠나.
정세균 국무총리. 동아일보 DB
● 헌법이 보장한 총리의 장관 해임 건의
정세균 국무총리가 나서야 할 이유가 여기 있다. 헌법 제87조③항은 국무총리가 국무위원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10일 기자간담회에서 정세균이 추미애에게 ‘절제된 언어’ 경고를 보냈지만 그 정도로는 총리로서의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그러나 그건 정세균 자신의 무덤을 파는 길이다. 정 총리는 추미애 해임을 건의해야 한다. 여권의 누구도 못 하는 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정세균은 단박에 이낙연, 이재명, 심지어 윤석열을 누르고 대선주자로 각인될 수 있을 것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동아일보 DB
● 국민을 위한 정치, 정세균이 선택하라
아니다. 대선주자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대통령이나 일개 정권 아닌 국민에 봉사하는 국무총리기에 간절한 국민의 바람을 전하는 바다. 헌법에 따라 공개적으로 대통령에게 법무부 장관 해임을 건의하기 바란다. 그것이 코로나19 때문에 거리에 나가 외치지 못하는 국민을 대신하는 길이다. 헌법에 명시만 돼 있을 뿐 어떤 총리도 못한 국무위원 임면 건의를 감행한 첫 총리로 역사에 남는 길이기도 하다. 작년 9월 30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총리로서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의 해임을 건의할 의사가 있느냐는 야당 질문에 “해임 건의 문제는 진실이 가려지는 것을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는 말로 피해갔다. 그래도 건의할 용의가 없느냐는 거듭된 질의에는 “요란하게 총리 역할을 수행하기보다 훗날 그 시점에 이낙연이 무슨 일을 했구나, 국민이 알 수 있다면 다행”이라는 말로 요란하게 빠져나간 전력이 있다(현재 이낙연의 대선 주자 지지율이 좀처럼 안 오르는 것도 이런 매끄러움 때문이라고 본다).
정세균 국무총리와 추미애 법무부장관
● 해임되지 않아도 국민은 정세균을 주목할 것
문파보다 더 많은 국민이 새롭게 정세균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대통령은 언론에 귀 기울이지 않고, 원로는 존재하지도 않는 상황이다. 문파 무서워 아무도 쓴소리를 못 하는 이 나라에서 추미애 해임을 건의할 수 있는 사람은, 지금 그만두어도 아쉬울 것 없는 정세균뿐이다. 그리하여 추미애가 해임되면 우리나라는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민주당에서도 진정한 개혁을 하려는 세력이 나올 수 있다. 만일 해임되지 않는다 해도, 국민의 눈은 정세균에게 쏠릴 것이다. 그는 2009년 당 대표 시절 좌우를 뛰어넘는 민생정치를 위해 ‘뉴민주당 플랜’을 마련했던 정치인이었다. 지금이야말로 정세균이 좌우를 뛰어넘어 국민을 살리는 정치를 해야 할 때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