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산하 세계식량계획(WFP)이 14일 내년에는 코로나19보다 더 무서운 ‘기근 바이러스’가 인류를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올해 밀 가격이 60% 급등한 남수단, 감자 및 콩 가격이 20% 이상 오른 인도 미얀마 등 30여 개국은 벌써 기근을 겪고 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도 코로나로 식량 생산과 공급이 줄면서 세계 기아 인구가 당초 예상했던 1억3000만 명의 두 배가 넘는 2억70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했다.
▷페니실린 항생제가 대량 보급된 1940년대 이후엔 지구촌에서 전염병으로 인한 대규모 기근은 사실상 사라졌다. 1930년대 우크라이나 인구의 20%가량이 희생된 대기근은 소련의 과도한 식량 징발 등 정치적 압박에 따른 비극이었다. 20세기 들어 전쟁을 제외하고는 전 지구적 차원에서 인류를 집단적 기근으로 몰아넣은 사례는 없었다. 국지적으로는 1984년 가뭄으로 아프리카 상당수 국가들이 기아에 허덕였지만, 극심한 영양 부족을 겪는 세계 인구는 1970년의 28%에서 2015년 11%로 급속히 감소해왔다. 그런데 코로나로 인해 이런 흐름이 바뀌고 전쟁에 버금가는 기근 피해가 발생할 가능성을 WFP가 경고한 것이다.
▷지난달 노벨위원회는 WFP에 기근 퇴치에 헌신한 공로를 인정해 노벨평화상을 수여하면서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는 식량이 백신”이라고 했다. 팬데믹은 과거 전쟁이 초래한 것보다 더 파괴적인 식량 위기를 예고하고 있다. 이런 전례 없는 위기 속에서도 협력 대신 자국 이기주의에 몰두하는 국가들이 늘어난다면 굶주림도 감염병처럼 전파될지 모른다. 코로나를 버티는 것도 힘든데 기근까지 확산되는 최악의 시기가 곧 닥쳐올 것이라는 경고가 무겁게 다가온다.
김영식 논설위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