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서울 양천경찰서 앞에서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회원 등 20여 명이 기자회견을 열고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조응형 사회부 기자
60대 신모 씨는 연신 “허망하다”며 눈물을 훔쳤다. 그 예쁜 아이가 잊혀지질 않는다며. 신 씨는 딸 김모 씨와 함께 입양 전 아이를 돌봐주는 일을 한다. 바로 지난달 아동학대로 의심되는 상처를 입고 세상을 떠난 입양아 A 양을 키웠던 위탁모였다. 그는 아직도 자기 손으로 젖병을 물리고 기저귀를 갈았던 아이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7월 말에 아이와 엄마를 만난 적이 있어요. 아이를 잠깐 안았는데 제 옷깃을 꽉 잡고 안 떨어지려고 하는 거예요. 그냥 제 냄새를 기억하나보다 하고 좋아했었는데…. 그렇게 어여쁜 아기가 학대를 당하고 있을 줄은 몰랐습니다.”
A 양 사건에 모두가 공분하는 건 아이의 죽음을 막을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기 때문이다. 5월 어린이집 원장이 A 양 몸에 생긴 멍을 보고 신고했고, 6월엔 부모의 지인도 A 양이 차 안에 30분 이상 방치된 걸 알고 경찰에 알렸다. 9월엔 아이 체중이 급격히 줄어든 걸 수상히 여긴 소아과 원장도 신고했다. 하지만 경찰은 ‘마사지를 하다 멍이 들었다’ ‘입안에 상처가 나 음식을 먹지 못했다’는 부모의 말을 믿었다.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의 적극적인 개입이 있었다면 A 양이 그런 식으로 세상을 떠났을까. 아동학대처벌법 제12조는 경찰이나 아동학대 전담공무원이 학대 현장을 발견할 경우 학대행위자를 피해아동으로부터 격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부모의 말만 들은 경찰이 과연 아동학대 근절 의지가 있는지 궁금하다”고 비판했다.
만시지탄이지만 경찰도 16일 아동학대 신고 대응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신고가 2회 이상 접수되고 아동에게 상흔이 발견되면 우선 부모와 아동을 분리시키겠다”며 “경찰의 예방적 조치 권한을 키우는 방향으로 관련법 개정도 촉구하겠다”고 설명했다.
물론 이런 대책들이 A 양을 되살릴 수는 없다. 하지만 지금도 어디에선 말도 못 하는, 혹은 말을 들어주기만 바라는 어린아이가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지 모른다. 이번 사건을 명확히 밝히고, 강력한 처벌과 실효성 있는 개선책이 필요한 이유다. 그래야 우리 모두 이제라도 A 양에게 떳떳할 수 있다.
조응형 사회부 기자 yesbr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