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은 눈동자, 처진 눈 꼬리, 풍성한 백발에 푸근한 미소를 날리는 ‘꽃중년’ 같은 이 남자. 하지만 진한 분장에 검은 사제복을 입고 미간을 팍 찌푸리는 순간, 마치 스위치를 켜듯 사랑에 미친 나쁜 남자로 돌변한다.
10일 개막한 뮤지컬 ‘노트르담 드 파리’서 권력의 상징이자, 집시 여인 ‘에스메랄다’를 탐하는 대주교 ‘프롤로’ 역의 다니엘 라부아(71)가 한국 무대에 처음 선다. 그는 이번 출연진 중 ‘노트르담 드 파리’ 초연에 참여했던 유일한 배우. 세계서 가장 유명한 원조 프롤로의 내한 소식에 일찌감치 기대감을 모았다. 그를 보러 유럽, 중국, 대만으로 ‘원정 덕질’에 나서야 했던 국내 팬들도 환호하고 있다.
다니엘은 “모든 공연장이 멈춘 지금, 한국은 유일하게 라이브 공연을 지속하는 걸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먼저 한국을 경험한 리샤르 샤레스트(그랭구와르 역)와 안젤로 델 베키오(콰지모도 역)가 ‘절대 놓쳐선 안 되는 멋진 곳’이라고 극찬했다.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다니엘은 프롤로를 ‘나쁜 남자’로 정의했다. 종교적 권위와 힘으로 모든 걸 지배하던 그는 주체할 수 없는 욕망에 사로잡혀 정작 자신의 마음은 통제하지 못한다.
“사랑, 감정 앞에 무너지기 쉬운 인물입니다. 나쁜 남자지만 사실 인간적이죠. 우린 주어진 대로 살 수밖에 없는 존재이기에 약점을 갖고 있잖아요. 그는 우리의 ‘다크 사이드(dark side)’입니다.”
프롤로와 무대 밖 다니엘을 비교해달라고 하자 “저는 엄격한 금기나 규율과는 거리가 먼 자유로운 사람이다. 특권이라는 감옥에 갇힌 죄수 ‘프롤로’와는 다르다. 그저 노래하고, 책 읽고, 운동하며 행복하한 일상을 보내는 인간”이라고 했다. 그는 “팬이야말로 저를 가치 있게 만드는 존재”라며 고마움을 표했다. 하지만 그가 ‘무대를 찢는다’고 평가받는 1막 마지막 넘버에서 그는 객석을 바라보며 절규한다. “당신은 나를 파멸시킬거야!”
내년 1월 17일까지 서울 블루스퀘어. 8세 관람가
김기윤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