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빨리 돌아가는 ‘탄소중립’ 시계
강은지 정책사회부 기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해외 정상들과 통화하며 밝힌 메시지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동맹과 다자주의 외교를 강조한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기후변화 측면에서도 바이든 후보의 당선은 ‘미국의 귀환’을 의미한다. 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국제사회 논의 테이블에서 빠져 있던 미국이 다시 참여하는 것이다. 국제사회의 움직임이 빨라지는 만큼 한국도 ‘대전환’을 서둘러야 한다.
○ 미국, 파리기후협약 재가입 예고
바이든 당선인의 기후 공약 핵심이다. 탄소중립은 온실가스 배출량과 흡수량이 같아 순배출량이 ‘제로(0)’가 되는 것을 뜻한다. 이를 위해 바이든 당선인은 향후 4년간 청정에너지와 친환경 인프라 구축에 2조 달러(약 2228조 원)를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바이든 당선인은 무역 보건 복지 노동 등 여러 분야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다른 소신을 밝혀 왔지만 가장 극명한 차이를 보인 건 환경 정책이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한 파리기후협약 재가입 의사도 밝혔다. 미국이 앞으로 기후변화 대응에 적극 나서겠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공약이다.
2015년 197개국이 협의한 파리기후변화협약은 ‘지구의 평균 온도 상승을 2도 아래로 유지하고 1.5도로 제한하도록 노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미국은 2030년까지 자국에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2005년 대비 25∼28% 줄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은 2017년 당선 5개월 만에 파리기후협약 탈퇴를 선언했다. 미국은 지난해 11월 4일 탈퇴 의향서를 제출했고 1년이 지난 이달 4일 공식 탈퇴했다. 바이든 당선인이 예고한 대로 대통령 취임일인 내년 1월 20일 미국이 파리기후협약 재가입을 신청한다면 30일 뒤인 2월 19일 미국은 당사국 자격을 회복하게 된다.
○ “2050 탄소중립” 국제사회 중심 기류로
기후변화 대응의 시급성과 심각성이 커지면서 ‘2050년 탄소중립’은 최우선 목표가 됐다. 201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1.5도 이내로 맞추려면 2050년에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제로’로 낮춰야 한다는 내용의 특별보고서를 발표한 것이 신호탄이었다. 이후 영국과 프랑스, 유럽연합(EU) 등 17개국이 탄소중립 도달 시기를 선언했다.
최근 동아시아에서도 탄소중립을 선언하는 국가들이 늘었다. 9월에는 중국이 2060년, 지난달 26일에는 일본이 2050년 탄소중립 목표를 선언했다. 한국도 지난달 28일 문재인 대통령이 국회에서 “2050년 탄소중립을 목표로 나아가겠다”며 탄소중립 달성 시기를 밝혔다. 국제적인 탄소중립 흐름에 동참한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의 등장은 ‘2050년 탄소중립’을 향한 전 세계의 움직임을 더 빠르게 할 것으로 보인다. 11일 ‘2050 저탄소 발전전략’에 대해 보고를 받은 문 대통령도 “2050년 탄소중립은 우리 정부의 가치 지향이나 철학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요구되는 새로운 경제·국제질서”라고 강조하며 “국제적으로 뛰기 시작한 상태인데 우리만 걸어갈 수는 없다”고 언급했다.
○ 탄소중립, 어렵지만 가야 할 길
기본은 에너지 변화다. 그중에서도 석탄발전을 줄이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석탄은 전기를 만드는 재료(석유 가스 원자력 재생에너지 등) 중 가장 많은 온실가스를 내뿜는다. 우리나라는 2018년 기준으로 전체 에너지 발전량 중에서 석탄발전이 가장 많은 비중(41.9%)을 차지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25.8%)과 비교하면 석탄발전 의존율이 두 배 가까이 크다. 그만큼 석탄발전 퇴출은 어려운 과제다. 그러나 탄소중립으로 향하는 길에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다.
그 대신 재생에너지를 확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전기 공급 구조를 바꿔야 한다. 기존에는 일부 발전사만 전기를 생산했지만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개인, 지방자치단체, 기업 등 다양한 주체가 전기를 생산하게 된다. 재생에너지만 골라서 구입하거나 생산자와 직접 거래를 해야 하는 상황이 늘어날 텐데 한국전력공사를 통해서만 전기를 살 수 있는 현 상황은 이를 어렵게 한다. 정부도 이 문제를 인식하고 관련 법안 개정을 논의 중이다.
재생에너지 확대는 우리 기업의 경쟁력 제고 차원에서도 시급한 문제다. 글로벌 경제는 ‘RE100’ 참여 요구가 커지는 상황이다. RE100은 제품 생산에 쓰는 전력을 100% 재생에너지로 활용하자는 기업들의 자발적 캠페인이다. 구글, 애플, BMW 등 260여 개 글로벌 기업이 가입해 있다. 이들이 언제든 협력 업체에 재생에너지 활용을 요구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2일 SK그룹 8개 계열사가 처음으로 RE100 위원회에 가입 신청을 했다.
EU가 탄소국경세를 검토하는 상황도 재생에너지 확대를 서둘러야 하는 이유다. 탄소국경세는 탄소배출 규제가 약한 나라에서 EU로 수출하는 제품에 관세 등의 형태로 비용 부담을 지우는 것이다. EU는 내년 상반기까지 탄소국경세 적용 대상과 방식을 논의하고 법제화해 2023년부터 시행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이 같은 국제 경제의 흐름은 탄소배출을 얼마나 많이 줄이는지에 따라 시장경쟁력이 결정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대로 대비하면 시장을 선도할 기회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당분간 재생에너지로의 전환과 제조 공정의 에너지 효율 개선, 대기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CCUS) 등에 대한 연구 개발이 각국에서 대대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 사회 전 분야의 ‘대전환’ 필요
탄소중립을 달성하려면 에너지뿐만 아니라 사회 전 분야가 대대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건물은 조명, 난방, 환기 등으로 소모되는 에너지를 줄여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나아가 태양광이나 지열 등을 활용해 직접 에너지를 생산하는 기능도 갖춰야 한다.
도로, 철도, 해운, 항공 등 수송 수단과 방식도 혁신해야 한다. 내연기관 차량 퇴출 움직임이 대표적이다. 노르웨이(2025년), 네덜란드(2030년), 영국(2035년), 프랑스(2040년)는 내연기관 차량 판매 금지 연도를 공표했다. 바이든 당선인도 2030년까지 전기차 신규 충전소를 50만 개 이상 만들고 친환경차 구매 보조금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또 항공 및 해운 부문에서 연료로 배출되는 온실가스를 줄이는 국제 협약을 주도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관련 규제가 강화될 가능성이 높다.
전방위적 전환 과정에서 지자체들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진다. 중앙정부가 에너지 전환이나 산업 전환 같은 굵직한 변화를 결정하면 현장에서 광역·기초지자체들이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친환경차 보급과 친환경 건축 리모델링 사업 등은 모두 지자체 관할로 이뤄진다.
새롭게 빚어질 갈등을 관리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탄소중립 사회로 가는 과정에서 화석연료 기반 산업 종사자는 일자리를 잃을 수 있다. 재생에너지 설비를 확장하는 과정에서는 입지 선정과 관련해 주민 간 갈등이 불거질 수도 있다. 기후위기의 심각성과 대응 필요성을 충분히 알리지 않는다면 시민들은 자신이 경유차를 탈 수 없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할 수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른바 ‘정의로운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은 “후퇴 시나리오가 섬세하게 마련되지 않았을 때 전환 과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상상해보라”며 “주유업계, 내연기관업계, 석탄발전업계 등은 업종별, 노동자별, 연령별, 지역별 전환 계획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전환 과정에서 필요한 재교육·재취업 지원 비용 추산 작업도 하루 속히 이뤄져야 한다.
한국의 탄소중립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은 아직 공개되지 않았다. 한국은 파리기후협약에 따라 올해 말까지 유엔에 2050년의 기후 비전과 달성 방안을 담은 ‘2050 장기 저탄소 발전전략(LEDS)’을 제출해야 한다. 전문가 의견과 설문, 토론 등을 거친 이 보고서는 조만간 첫 결과물이 나온다. 정부는 관련 공청회를 연 뒤 최종안을 마련해 유엔에 제출할 방침이다.
강은지 정책사회부 기자 kej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