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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여수-울산 산단 기업들 ‘대기오염 과징금’ 반발

입력 | 2020-11-18 03:00:00

“오염배출량 규제 과도” 이의 신청




제조업체가 밀집한 울산공단 전경. 동아일보DB

전남 여수시와 울산의 제조 기업들이 대기오염물질 배출 문제로 ‘과징금 폭탄’을 맞을 위기에 처했다. 이들은 환경부를 대상으로 이의 신청에 나섰다.

17일 재계에 따르면 이 기업들은 올해 4월부터 시행된 ‘대기관리권역의 대기환경 개선에 관한 특별법’(대기관리권역법)에 따라 9, 10월에 환경부로부터 대기오염물질 배출허용총량을 할당받았다. 그런데 대다수가 이를 지키지 못해 100억∼1700억 원 수준의 과징금을 물게 될 상황이다.

여수국가산업단지 내 28개 사업장은 최근 ‘대기관리권역법 배출총량 과소할당에 따른 공동건의문’을 전남도에 제출했다. 울산환경기술인협회에 속한 50개 사업장도 공동건의문을 환경부에 냈다. “기업들이 법적 산정 방법에 따라 배출 할당량을 신청했지만 별다른 설명 없이 대폭 감축됐다”는 게 기업들의 호소다. 건의문과 별개로 기업들은 할당량을 늘려 달라며 각자 이의 신청을 했거나 준비 중이다.

환경부는 “2024년까지 최적방지기술을 적용한 (오염물질) 배출량에 도달해야 한다”면서도 “올해는 첫해인 만큼 기업 입장을 최대한 반영해 배출량을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산업계는 “올해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우려하고 있다.




▼ 산업계 “오염배출 허용량 턱없이 적다”… 환경부 “충분히 협의, 문제없어” ▼


“수백억, 수천억 원대 과징금을 내거나 아니면 공장 가동을 멈추라는 것입니다.”

여수국가산업단지 관계자는 17일 통화에서 ‘대기관리권역의 대기환경 개선에 관한 특별법’(대기관리권역법)에 따라 산단 기업들이 지나치게 낮은 대기오염물질 배출 할당량을 받은 데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여수산단이 전남도청에 제출한 공동 건의문에 따르면 여수산단 27개 사업장은 초과 배출로 인한 과징금을 올해 총 6798억 원을 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더 심각한 점은 2021년 1조7285억 원, 2022년 3조2863억 원, 2023년 5조767억 원, 2024년 8조8923억 원으로 과징금 규모는 해가 갈수록 급격히 불어나는 것으로 추산됐다. 5년간 과징금 규모만 총 19조6636억 원이다.

이 관계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적자를 보는 제조업이 적지 않은데 이제는 과징금 폭탄까지 떠안게 됐다”고 했다.

○ 환경부 “충분히 협의” 업계 “적응 시간 필요”

대기관리권역법은 지난해 3월 국회를 통과했다. 수도권의 미세먼지 비상저감 조치가 7일 연속 이어지는 날이 자주 나오자 미세먼지 저감의 필요성이 대두됐던 시기다. 이 법에 따르면 대기오염이 심하거나 오염물질 발생이 많은 곳은 대기관리권역으로 지정한 다음 사업장마다 2024년까지 줄여야 할 질소산화물, 황산화물, 먼지 배출 목표치 총량이 할당된다. 할당량을 초과하면 물질별로 kg당 계산해 과징금을 물도록 돼 있다. 대상 기업들이 2024년까지 오염물질 배출을 최저 수준으로 줄일 수 있는 최적방지기술을 구현하도록 유도한다는 취지다.

현재 수도권 중부권 남부권 동남권 등 4개 권역이 지정돼 발전소나 시멘트 철강 석유화학 조선 등 주요 제조업을 대상으로 시행 중이다. 지난달까지 사업장별 할당이 마무리됐고 현재 30일간 이의 신청 절차가 진행 중이다.

산업계는 미세먼지 감축을 위해 오염물질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는 취지는 공감하지만 환경부가 현실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배출 총량을 할당했다고 주장한다. 여수산단에 따르면 각 사업장은 대기관리권역법 시행규칙에 나온 계산법에 따라 할당량을 신청했는데 받아 든 배출 허용 총량은 이보다도 30% 정도 감축됐다. 이는 환경부 산하 환경안전공단의 사전 검토 할당량보다도 현저히 줄었다는 것이다. 울산환경기술인협회도 건의문에서 “업종에 따라 매 1∼5년 정기보수 기간 내에만 가동을 멈추고 (오염물질) 방지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곳이 적지 않다. 법에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지난해 4월 법 제정 이후 권역별 설명회를 열어 기업과 충분한 협의를 거쳤다는 입장이다. 환경부는 “2024년까지 정해진 총량 및 업계가 달성해야 하는 배출 기준은 지난 1년간 업계가 제출한 자료들을 근거로 수차례 협의를 거친 결과물이기 때문에 변경하기 어렵다”며 “이달 말까지 기업들의 이의 신청을 받아 협의한 뒤 올해 할당량을 최종적으로 확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환경부는 지역별 배출 총량에서 10%가량을 여유분으로 비축해둔 것을 활용해 기업의 입장을 최대한 반영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 한국만 농도·배출 모두 규제

하지만 산업계는 올해만이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향후 5년 총량이 이대로 진행되면 과징금 폭탄의 위협은 지속된다는 것이다. 또 배출허용총량을 초과 배출하면 초과량의 최대 2배까지 다음 해 배출허용총량에서 삭감되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올해 첫 단추를 잘못 끼우면 과징금은 과징금대로 내고, 다음 해 할당량도 줄어들어 과징금 규모가 커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한 기업 관계자는 “2배씩 계속 삭감되면 2, 3차 연도만 돼도 공장 가동을 못 하는 사업장이 쏟아질 수 있다”며 “정부가 요구하는 최적방지시설을 설치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달성하기 어려운 배출량이 할당된 곳이 많다”고 말했다.

규제 자체가 해외에 비해 과도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본은 대기오염방지법, 미국은 청정대기법, 유럽연합(EU)은 대기오염물질 배출 규정을 통해 배출되는 대기오염물질의 농도 규제만 실시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지자체 협약을 통해 24개 지역에서만, 미국은 주 규정으로 동부지역에서만 추가로 총량규제가 적용되고 있다. EU는 총량 규제가 없다. 한국은 기존 농도 규제에다 4월부터는 총량 규제까지 시행하면서 전국에서 두 가지 규제가 동시에 시행된다. 환경부에서는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경제단체 관계자는 “한국의 총량규제는 대상 물질이 많고 대상 시설도 발전소와 제조업을 모두 포함하는 등 규제 강도가 미국과 일본보다 세다. 기업이 돌아가게는 해야 한다”고 말했다.

허동준 hungry@donga.com·강은지·김도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