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명 예술가 중에는 최 시인이 ‘로망’이라 표현했던 도심 호텔 생활자가 여럿 있다. 미국 시인 겸 비평가 도러시 파커는 뉴욕 맨해튼의 앨곤퀸 호텔에 살면서 당대 문장가들과 교류했다. 그가 살던 방은 ‘도러시 파커룸’으로 꾸며져 마케팅에 활용되고 있다. 첼시 호텔도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 액션 페인팅의 선구자 잭슨 폴록을 비롯해 20세기 이단아들이 숙박비 대신 작품을 내밀며 무명 시절을 보냈다. 예술가들이 도심 호텔을 찾는 이유는 다양한 사람들과 부대끼며 영감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젠 전세 난민도 호텔살이를 할 수 있게 됐다. 정부가 19일 발표하는 전세대책에는 호텔방을 임대주택으로 리모델링해 공급하는 방안도 있다. 서울시가 올 초 종로구 베니키아 호텔을 ‘역세권 청년주택’으로 개조해 238채를 공급했는데 호텔을 임대주택으로 전환한 첫 사례다. 코로나19로 서울 호텔 객실 점유율이 30%대로 내려앉고, 서민들은 전월세를 못 구해 발을 구르니 일석이조의 묘책일까.
▷요즘은 집을 호텔처럼 이용하는 에어비앤비족(族)과 호텔을 단기로 빌려 집처럼 사는 노마드족들로 공간 혁신이 일어나는 시대다. 호텔살이는 ‘선택’일 때나 낭만이지 그것밖에는 대안이 없는 상황에선 남루한 일상일 뿐이다. 최 시인의 갑질 논란은 그가 저소득층 근로장려금 지급 대상이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가난한 시인이 호텔에 갑인 적이 있던가’라는 반론이 힘을 얻고, 집주인이 “1년 더 살라”고 배려하며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호텔방 전월세라도 알아봐야 하는 전세 난민들에겐 수요만큼 집을 공급하는 것 말고는 행복한 결말이 있을 수 없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