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자베트 비제 르브룅, 딸 쥘리를 안고 있는 자화상, 1786년.
르브룅은 아버지가 화가여서 일찌감치 그림을 배울 수 있었다. 10대 초반부터 전문 초상화를 그렸고, 15세엔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을 부양할 만큼 돈도 충분히 벌었다. 19세에 파리 생뤼크아카데미의 회원이 되었고, 2년 후 화가이자 화상인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그림 실력뿐 아니라 미모와 패션 감각, 사교성까지 뛰어나 상류층 고객들의 주문이 쇄도했다. 곧 마리 앙투아네트의 주목을 받게 됐고, 여왕의 공식 초상화가이자 왕립아카데미의 회원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 그림은 31세 때 그린 자화상이다. 여섯 살 쥘리를 안고 있는 화가의 모습은 무척 행복해 보인다. 하지만 그림이 1787년 살롱전에 출품되자 큰 논란이 일었다. 예술가들은 물론 후원자들도 비난을 퍼부었다. 이유는 단 하나. 여자가 이를 드러내고 입을 벌려 웃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당시 사람들에게 미술의 전통을 깨는 발칙한 행위로 간주됐다.
시대를 앞선 화가였지만, 르브룅의 예술은 꽤 오랫동안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다. 사교술과 외모를 내세워 실력을 인정받았다거나 자아도취에 빠진 모성애를 그렸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평생 800점이 넘는 작품을 남긴 르브룅은 비교적 최근에 와서야 재조명되고 있다. 미모와 재능, 인정받는 전문직, 모성애 넘치는 엄마. 요즘 같으면 ‘슈퍼맘’ ‘원더우먼’ 소릴 듣지 않았을까.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