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리티지 보고서 “CIA, 北 ICBM 재진입 기술 확보했다고 판단” 함정서 미사일 쏴 모의 ICBM 요격 北 신형 ICBM 공개하자 무력 시위
해상 함정서 ICBM 요격시험 성공 미국의 요격 미사일 ‘SM-3 블록 2A’가 17일(현지 시간) 해군 이지스함 존 핀(DDG-113)에서 발사되고 있다. 이 미사일은 모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우주 공간에서 격추하는 데 성공했다. 사진 출처 미국 미사일방어청 홈페이지
미국 미사일방어청(MDA)은 17일(현지 시간) 해군 함정 존 핀(DDG-113)에서 쏘아 올린 요격 미사일로 모의 ICBM을 격추하는 시험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 함정은 이지스 탄도미사일 방어(BMD) 시스템 장비가 장착된 구축함인 미 해군전함으로, 최신형 요격 미사일 ‘SM-3 블록 2A’를 장착하고 있다.
MDA에 따르면 미 동부 시간으로 이날 0시 50분 남태평양 마셜제도에 있는 콰절레인환초의 로널드 레이건 탄도미사일 방어시험장에서 모의 ICBM이 하와이 북동쪽 해역을 향해 발사됐다. 존 핀 구축함은 ICBM의 궤적을 분석한 뒤 ‘SM-3 블록 2A’를 발사해 우주 공간에서 격추했다. 존 힐 미사일방어청장은 “이지스 BMD 프로그램의 놀라운 성취이자 중요한 이정표”라며 “(이번 시험은) 예상치 못한 미사일 위협에 대항하는 대비책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ICBM의 재진입 기술은 핵 소형화와 함께 북한이 대미 핵 타격력을 구비하기 위한 ‘최종 관문’에 해당된다. ICBM 발사 후 핵탄두를 실은 재진입체(RV)가 대기권을 벗어났다가 다시 들어와 음속의 20배 속도로 하강하면서 섭씨 8000도 안팎의 마찰열과 엄청난 충격을 견디고 목표 지점에 투하돼야 ICBM의 실전 운용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2017년 11월 ICBM인 화성-15형 발사 때만 해도 북한이 이런 재진입 기술은 확보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았지만 3년 만에 기술을 완성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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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리티지 재단, CIA 평가 공개
北, ICBM 정상각도 발사 안하고도대기권 재진입 기술 확보
가능성분석 근거는 구체적 언급 안해
통상 ICBM의 재진입 기술 검증은 정상 각도로 발사한 뒤 수천 km 밖의 낙하지점에 떨어진 재진입체를 회수해 이상 유무를 분석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재진입체가 대기권을 벗어났다가 다시 들어와 음속의 20배로 낙하하는 과정에서 엄청난 마찰열(섭씨 8000도 이상)과 충격파를 견디고 내부의 탄두를 보호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다. 미국도 반세기 전 개발한 미니트맨3 ICBM을 본토에서 약 7600km 떨어진 태평양 해역에 발사한 뒤 재진입체를 수거하는 방식으로 비행 및 재진입 성능을 검증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은 2017년 화성-14·15형을 고각(高角)으로만 쏴 올려 재진입 기술은 아직 검증되지 못했다는 평가가 우세했다. 북한이 ICBM용 재진입 기술을 지상에서 검증할 수 있는 관련 설비도 갖추지 못한 점에서 화성-12형 중거리탄도미사일(IRBM)이 기술적 한계라는 분석이 많았다. 군 관계자는 “(CIA 평가가 사실이라면) 북한은 ICBM을 정상 각도로 쏘지 않고도 재진입 기술을 완성한 첫 케이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클링너 선임연구원은 CIA가 어떤 근거로 이런 평가를 했는지는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군 안팎에선 2017년 화성-14·15형의 잇단 고각 발사 성공 이후 CIA가 북한의 재진입 기술 개발 관련 첩보를 수집하는 데 총력을 기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첩보위성을 비롯한 최첨단 감시장비와 휴민트(HUMINT·인적정보) 등으로 평양 인근의 신리·원로리 등 ICBM 개발 거점의 동향을 집중 추적하는 과정에서 재진입 기술 완성을 뒷받침할 ‘스모킹 건’(결정적 증거)을 포착했을 개연성이 크다는 얘기다.
지난달 당 창건 기념 열병식에서 북한이 전격 공개한 세계 최대급의 ‘괴물 ICBM’이 주요 단서라는 주장도 나온다. 화성-14·15형의 개발 과정에서 축적된 기술로 ICBM용 재진입체 및 다탄두 기술을 완성했고, 그 결집체가 ‘괴물 ICBM’으로 구현됐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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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격 미사일 ‘SM-3 블록2A’의 발사 모습. 미국 미사일방어청 홈페이지
‘FTM-44’로 명명된 이번 시험은 하와이를 ICBM 공격에서 보호하는 시나리오하에 진행됐다. 당초 5월 20일 실시 예정이었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연기되다가 이번에 이뤄진 것. 이 시험은 주로 중거리미사일 대응용으로 설계된 요격 미사일 ‘SM-3 블록 2A’가 ICBM 위협에도 대응할 능력이 있는지를 올해 말까지 평가하라는 의회의 요구를 충족하는 것이라고 미국 미사일방어청(MDA)은 설명했다. 해군 함정 존 핀(DDG-113)에서 발사된 SM-3 블록 2A는 이번이 6번째 실험이다.
미사일 전문가인 미국과학자연맹(FAS)의 앙킷 판다 선임연구원은 트위터에 “이란이 ICBM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국 북한(대응용)”이라는 글을 올렸다. 뉴욕타임스도 “이번 요격 시험은 미국이 북한의 무기 개발에 대응해 미사일 방어 역량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뤄졌다”며 사실상 북한이 타깃이라고 전했다.
북한은 지난달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길이가 최대 24m에 달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이동식 신형 ICBM을 전격 공개했다. 최대 600kg급 핵탄두를 3개까지 싣고 미국의 수도 워싱턴을 포함한 동부 주요 도시들을 타격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미국은 북한이 조만간 ICBM을 발사하는 등의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은 낮다고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불복과 소송전, 이로 인한 미국의 혼란이 계속되는 시점에 도발을 감행해봐야 북한으로서는 기대만큼의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것. 다만 북한은 미국의 새 대통령 취임 첫해에 대형 도발에 나서 ‘몸값’을 높이는 전략을 자주 써왔다. 워싱턴의 외교 소식통은 “북한은 미국의 상황을 면밀히 살피면서 미국의 관심을 끌 방식과 시점, 효과 등을 계산하고 있을 것”이라고 했다.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lightee@donga.com /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