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 수단 전락한 법치와 민주주의 국민 아닌 이념 위한 정권으로 변질 이기적 대립은 반사회적 파국의 길 집단폐습 배제하고 희생정신 되찾자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
집을 짓는 데는 10년이 걸려도 헐 때는 1년이면 된다. 나라 건설에 들인 수십 년의 수고가 몇 해 동안에 무너질 수도 있다. 박근혜 정권 후반기에 우리는 그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개혁을 호소했다. 현 정부는 탄생하면서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나라다운 나라’를 창건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그러나 정치계가 지난 4년 동안 상실한 것은 많아도 건설한 것은 보이지 않는다. 정치계의 무지와 무능의 결과다. 민주당은 민주주의를 포기했고, 국민의힘을 따르는 국민은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그 책임은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에서 비롯됐다. 국민들의 기대와 신뢰를 외면했기 때문이다. 국제적으로는 인권의 존엄성과 국제적 공약을 위배했다. 그 때문에 한국이 선진국 대열에서 밀려난 지 오래다. 북한의 동포를 위하기보다는 북한 정권의 동반자적 역할을 행한다는 인식을 받을 정도다. 안으로는 더 큰 과오를 범하고 있다. 정치 활동의 주체가 국민에게서 이념을 위한 정권으로 바뀌었다. 국민을 위한 정치가 아니고 정권을 위한 국민으로 전락시켰다. 민주당이 바로 그 주역을 담당하고 있다. 민주당 안에는 민주주의자가 보이지 않는다. 국민의 인간다운 선택과 삶의 가치보다는 대통령의 뜻에 복종하려는 공직자와 당 지도부를 볼 때 국민적 자괴감을 갖는다.
민주주의는 법치주의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 법이 질서를 위한 윤리적 가치를 포기하고 정권의 수단이 되면 입법과 사법은 권력에 대한 견제 역할보다 정권의 충견으로 퇴락한다. 소련과 러시아, 중국과 북한이 그 대표적 국가들이다. 우리 사법부가 정치와 인권의 정의로운 수호자이기를 염원했던 기대까지 무너져 가고 있다. 지금은 여야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입법을 위해 대치하고 있다. 상식과 질서가 자리 잡힌 국가에서는 상상도 못 하는 후진적 발상이다.
정치계와 정부가 민주주의를 위해 책임져야 할 기본 과제는 국민 통합이다. 정부와 손잡아야 할 국민이 분열하거나 대립을 일삼게 되면 그 국가는 자주권을 행사하지 못한다. 조선 왕조가 역사를 통해 남긴 비극적 교훈이다. 그런데 현 정부만큼 국민의 분열과 대립을 조작한 정권은 없었다. 지금도 그 폐습은 계속되고 있다. 대통령은 취임사에서뿐 아니라, 지금도 통합과 협치를 말한다. 결과와 상반되는 선언은 불신과 반감을 더해 줄 뿐이다. 민주사회의 통합과 협치는 대화를 통해 전체를 위한 가치를 추구할 때 가능해진다. 민주주의의 상식이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출발부터 투쟁에서 승리하는 길을 택했다. 이기적 대립과 싸움은 그 자체가 반사회적 파국의 길이다.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역사적 사실을 은폐하거나 진실을 왜곡하는 작업까지 감행한다. 필요할 때는 친일 반일의 양분법을 갖고 평가하며, 세계가 인정하는 역사적 진실을 국민들에게 숨기려 한다. 중국이 6·25전쟁을 미 제국주의가 일으켰다고 공언하고, 국내 일부 좌파들이 동의해도 정부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어떤 때는 역사적 사실들을 선택적으로 오도하는 우를 범한다. 역사적 진실과 평가를 정치인들이 앞장서서 조작하는 선진 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과 중국의 중간에서 정치와 경제를 분리 대응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자유와 평화, 번영을 목적 삼았던 한미동맹의 뚜렷한 목표와 역사적 업적까지 왜곡한다면 미래는 퇴락의 길로 빠져든다. 인권과 자유는 인류를 위한 영원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희망을 포기할 수는 없다. 국민은 민주당원이나 야당인이기 이전에 대한민국 국민이다. ‘민주당’ 안에도 민주정신은 절대적이며 ‘국민의힘’도 정치의 전통적 가치를 위하는 세력이 자리 잡히면 민주정치는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이기주의자와 집단의 폐습을 배제하고 애국적인 희생정신을 갖는다면 국민은 언제나 정의와 자유의 건설적 협력을 아끼지 않기 때문이다.
김형석 객원논설위원·연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