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3인조 록 밴드 ‘너바나’의 해체 전 모습. 왼쪽부터 크리스트 노보셀릭(베이스기타) 데이브 그롤(드럼) 커트 코베인(보컬·기타). 동아일보DB
임희윤 기자
#1. 너바나의 리더 커트 코베인(1967∼1994)은 그런지가 지닌 거대한 아이러니, 그 자체였다. 그런지는 염세적인 태도와 충격적 악곡으로 당시 미국 X세대의 영혼을 너무 뒤흔든 나머지 음악 장르뿐 아니라 패션을 가리키는 단어로까지 확대되는데, 그런지 패션의 요체는 구제 숍에서 산 늘어진 할머니 스웨터나 꽃무늬 드레스, 플란넬 셔츠와 찢어진 청바지, 오랫동안 안 감은 머리 등이다.
#2. 1993년 패션 디자이너 마크 제이컵스가 그런지 패션에 가격표를 새로 붙였다. 넝마 같은 그런지 패션에 고급 소재를 덧대 런웨이를 연 것이다. ‘Anarchy in the UK(영국에 무정부 상태를)’를 부르짖은 영국 펑크 록 밴드 섹스 피스톨스의 패션을 계승한 비비엔 웨스트우드가 여전히 안 싼 값에 팔리는 것을 보면 그러려니 할 만도 한데, 당대의 패션 평론가들은 제이컵스의 그런지 패션쇼를 만용으로 봤다.
#4. 워싱턴주 애버딘에서 태어난 코베인은 지독히도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가 이혼한 뒤 친척집을 전전했지만 애정 결핍으로 인한 이상행동으로 쫓겨나기 일쑤였다. 기타 연주와 작곡에 몰두하면서 레드 제플린이나 블랙 새버스 같은 영국의 하드록과 헤비메탈, 미트 퍼피츠나 소닉 유스 같은 미국의 인디 록이 지닌 어둡고 충동적인 에너지를 결합해냈다. 추레한 차림으로 시애틀의 작은 클럽을 돌며 파괴적인 노래를 불렀다.
#5. 자본은 후각이 좋다. 시애틀에 혁명적 음악가가 나타났다, 심지어 얼굴도 잘생겼다는 풍문이 퍼지는 속도는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도 꽤나 빨랐다. 메이저 레이블인 ‘게펜 레코드’와 계약하고 낸 너바나의 2집 ‘Nevermind’는 사실상의 데뷔 앨범으로 광풍을 일으키며 당대 팝계의 거의 모든 음악을 촌스러운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6. 남산서울타워가 손에 잡힐 듯 보이는 사대문 안의 단독주택에 어떤 생에서는 한번 살아보고 싶다. ‘플렉스님’ 논란을 보며 너바나의 ‘On a Plain(평야에서)’이 떠오른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떤 팬들은 코베인이 저 ‘plain’을 ‘plane(비행기)’과 일부러 혼동되게 사용했다고 믿는다. 춥고 흐린 워싱턴주에서 따사로운 캘리포니아주의 게펜 레코드사로 비행기를 타고 오면서 느낀 이중적 감정을 특유의 자학 정서로 풀어냈다는 것이다.
#7. ‘Nevermind’ 앨범은 ‘신경 쓰지 마’라는 제목과 달리 매우 신경 써 제작됐다. 프로듀서 부치 빅은 너바나의 무대 위 거친 에너지를 대중에 전달하기 위해 부러 조율이 망가진 기타를 들려주기도 했지만 코베인은 훗날 ‘Nevermind’는 너무 미끈하게 만들어진 팝 앨범이라며 자괴했다고 한다. 폭발적인 성공으로 MTV와 매거진을 도배한 너바나를 보며 주변 음악가들의 냉소도 이어졌다. 세상 최고의 반항아를 연기하며 패션 사진 촬영에 적극적으로 임하는 그들의 모습이 이율배반이라는 것. 인디펜던트, DIY, 저항마저 돈 받고 전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