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를 만드는 사람들/윌리엄 보스트윅 지음·박혜원 옮김/360쪽·1만8000원·글항아리
‘맥주를 만드는 사람들’의 저자는 “1파인트들이 맥주잔마다 문화, 정치, 관습으로 가득 차 있다. 당신이 어떤 술을 양조하고 마셨는지 말해준다면 나는 당신이 어느 시대에 어떻게 살았는지 알아맞힐 수 있다”며 “맥주는 그 시대의 거울”이라고 했다. 글항아리 제공
책은 맥주의 참맛을 아는, 그리고 맥주를 마시며 이 의문을 품은 맥주 ‘덕후’가 썼다. 저자는 현재 덕후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맥주 비평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전 세계 맥주 공장을 누빈다. 맥주 맛을 평가하고 찬양하며 돈도 버는 부러운 직업을 가졌다. 월스트리트저널, 잡지 GQ에 그가 맛본 맥주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런데 여기서 만족하지 못했다. 집에서 직접 원하는 맛의 맥주를 만들어 마시는 ‘홈 브루어’이기도 하다. 수천 가지 맛의 맥주에 탐닉하던 어느 날 그는 다시 근본으로 돌아간다. ‘맥주는 어디서 시작됐는가.’ 맥주는 “인류가 존재해온 시간만큼” 똑같이 존재했다.
그의 맥주 탐구 여정은 고대 바빌로니아에서 술을 빚던 사원 노동자의 삶에서 시작한다. 이어 약초를 맥주에 접목한 북유럽의 샤먼, 수도승, 농부, 맥주 공장을 세운 런던의 기업가, 미국 이민자, 라거를 미국으로 가져온 독일 이민자, 맥주 광고인까지. 맥주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운 여덟 개 집단의 흔적을 찾아 기록한 ‘맥주 역사서’라 할 만하다.
농경문화를 기반으로 한 바빌로니아에서는 곡물로 빵을 만드는 중간 과정에서 맥아(malt)가 탄생했다. 이를 활용한 수백 가지 레시피도 나왔다. 맥주도 그중 하나. 저자는 과거 방식을 재현한 양조장을 찾아 고대인이 했던 방식으로 야자수, 홉, 꿀 등을 넣어가며 우여곡절 끝에 맥주를 만든다. 신맛이 강하던 맥주도 점차 먹을 만한 수준으로 다듬어진다.
“맥주 맛을 표현할 때 널리 인정된 133개의 ‘맥주 단어’”로 표현하기 힘든 맥주도 세계 곳곳에서 만들어진다. 미국 캘리포니아에는 ‘나무 맛이 나는’ 맥주도 있다. 북유럽 게르만족 샤먼들은 썩은 보리, 기생 곰팡이, 버섯도 맥주에 넣었다. 강한 맛을 가진 맥주는 이들에게 마법 물약이나 마찬가지였다.
벨기에 수도원, 영국 런던의 펍을 찾아 특수한 맥주에 탐닉하는 모습도 나온다. 초기 미국에서 유행하던 ‘감 맥주’를 찾다가 저자가 직접 만들어보는 장면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요소요소마다 그가 드러낸 해박한 맥주 상식은 ‘맥주에 미치려면 이 정도는 돼야 하는구나’라는 감탄이 나올 정도다.
이야기는 맥주에서 그치지 않는다. 로마제국, 서유럽, 북유럽, 미대륙을 거치며 변천한 맥주는 서양 역사를 관통한다. 수도승과 이민자들이 물처럼, 전쟁에서 이기기 위한 묘약처럼 만들어 마셨던 맥주는 인류사와 맞닿아 있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