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출처 루이비통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
과거 조선에는 국기 대신 군주를 상징하는 어기가 있었습니다. 태극기는 어기의 태극팔괘도를 토대로 고종이 직접 참여해 제작됐습니다. 백성을 뜻하는 흰색, 관원을 뜻하는 푸른색과 임금을 뜻하는 붉은색을 화합시킨 동그라미를 넣어 정조의 군민일체 사상을 계승하였죠. 후에 이 동그라미는 반홍반청의 태극 무늬로 하고 그 둘레에 조선 8도를 뜻하는 팔괘를 배치해 나라의 통합을 상징하는 태극기가 됐습니다.
국기가 들어간 패션에는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국기는 나라의 상징으로서 존엄성의 유지를 위하여 법률로 관련사항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에 관한 대표적인 것이 애비 호프먼(Abbie Hoffman) 사건입니다. 1968년 10월 정치가이자 사회 활동가인 호프먼은 미국 국기의 디자인을 닮은 셔츠를 입고 집회를 열었다는 이유로 체포되었습니다. 호프먼은 기소되었고 유죄 판결을 받자 “나라를 위해 입을 국기 패션의 셔츠가 한 벌밖에 없는 것이 후회될 뿐”이라며 항소했고, 수정헌법 제1조에 근거해 판결이 번복됐습니다. 이 사건 후, 어느 정파의 정치인이건 애국심의 대표적인 표현으로 국기 패션을 입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다른 어떤 때보다도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주목을 끈 이번 미국 대통령선거에서도 바이든 그리고 트럼프 두 후보의 패션은 단연 성조기 패션이었습니다. 모자, 넥타이뿐 아니라 선거 캠페인에 사용된 모든 홍보물에도 성조기의 국기 이미지가 다양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정파를 떠나서 하나의 미국이라는 통합된 상징은 국기 패션으로 완성되었죠.
이처럼 역사적인 유래나 기원을 보더라도 국기의 가장 큰 상징은 통합이고 국기 패션은 그 통합을 이루어내는 가장 응집력 있는 도구일 듯합니다. 지금 그 어느 때보다도 힘든 시기일 수 있습니다. 성별 출신 인종 국가의 장벽이 의미가 없음을 실감하는 시기이기도 하죠. 국기와 국기 패션이 서로 다름을 구별 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통합된다는 의미임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간호섭 패션디자이너·홍익대 미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