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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블 붕괴’ 두려움에 원칙 잊어선 안 된다[동아광장/하준경]

입력 | 2020-11-23 03:00:00

가계부채 증가 소득증가 속도보다 빨라
어정쩡한 규제 ‘집=안전자산’ 인식 강화
빚으로 떠받친 집값 젊은 세대 좌절 가속화
유동성 확대 거품붕괴만큼 거품누적 우려
가계대출 소득 연계 작업부터 시작해야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

정부의 부동산대책들을 보면 그 근저에 어떤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혹시 일본처럼 집값 거품이 붕괴해 경제가 장기침체에 빠지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 말이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험은 마치 정신적 외상(外傷)처럼 정부 정책에 영향을 준다.

한국 정부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집값을 떠받치려고 시행했던 여러 조치들, 특히 최경환 전 부총리가 2014년에 내놓은 ‘빚내서 집 사라’ 정책은 이 두려움이 경제의 안전장치까지 해체할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빚으로 집값을 떠받친다는 이 기조는 놀랍게도 아직까지도 꺾이지 않고 있다.

국내총생산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보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2014년 초 78%였던 이 비율은 박근혜 정부 말기에 88%로 치솟아 3년 만에 10%포인트가 올랐다. 이 수치는 문재인 정부 출범 후에도 계속 올라 지난해 말엔 95%를 넘었다. 빚내는 속도가 여전히 소득 증가보다 빠르다. 다른 나라들도 그랬을까. 2014년 초부터 지난해 말까지의 가계부채 비율 추이를 보면 일본은 58∼59%로 안정적이었고, 유로 지역은 61%에서 58%로, 미국은 81%에서 75%로 하락했다. 가계소득 중 원리금 상환액 비율도 비슷한 모습이다. 한국처럼 가계부채가 급증하면서 소득 대비 집값이 뛰고 가계의 원리금 부담도 커진 선진국은 찾기 어렵다.

소득주도성장을 표방한 현 정부가 이 상황을 의도하진 않았겠지만 실제 정책들을 보면 어정쩡한 부분이 많다. 정권 초기 임대사업자에 대한 특혜 확대는 잘 알려진 사례다. 다주택자에게 특혜를 줘서라도 주택 수요를 창출해 집값 하락을 막자는 계산으로 해석될 여지가 충분했다. 이 정책은 방향을 틀었지만 이미 많은 물량이 잠겼다. 보유세 기준인 공시가격의 현실화는 효율과 형평을 위해 필수적이지만 보유세제에 구멍이 커 많은 이가 버티면서 물량을 내놓지 않고 있다. 임대차3법, 공공임대 확대 등 시장 선진화를 위한 조치들도 있었지만 이를 뒷받침할 물량 공급은 수요에 못 미친다.

결정적으로 금융규제가 아직도 핀셋규제라는 과거의 틀을 못 벗어났다. 총부채상환비율(DTI),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등 빚을 소득에 연계시키는 핵심 장치들이 지역과 집값에 따라 달라지는 조건부 규제의 틀에 묶여 있다. 이는 비규제지역, 중저가 주택으로 거품을 퍼뜨리는 풍선 효과를 야기할 뿐 아니라 집값이 안정되면 규제가 다시 완화돼 하락을 막아줄 것이라는 암묵적 신호를 줌으로써 주택을 안전자산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치명적 결과를 초래한다. 일단 집이 안전자산으로 인식되면 금융기관들은 위험관리보다는 주택대출 확대로 수익을 추구한다. 유사시 정부가 도와준다는 믿음에 근거한 도덕적 해이다. 한국의 주택대출 금리가 미국보다도 낮은 것은 금융 부문이 위험을 얼마나 저평가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어떻든 거품 붕괴보다는 낫지 않냐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빚으로 높은 집값을 떠받치는 한 젊은이들의 좌절, 세계 최저 출산율은 계속된다. 거품 붕괴가 문제 되는 것은 집값 폭락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쌓인 빚이 너무 많아 금융 부문이 부실을 감당 못 하고 또 민간이 빚 갚느라 지출을 못 하게 되기 때문이다. 집값 폭락이 두려워 거품 누적에 모호하게 대처할수록 후과는 더 커진다.

두려움의 근원인 일본 사례가 한국 현실과 다르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1990년대 일본의 거품 붕괴 때는 미국 국채금리가 5%를 넘을 정도로 투자처가 많아 돈이 빠져나가기 쉬웠지만 지금은 전 세계가 초저금리라 돈이 갈 곳이 마땅치 않다. 당장 거품 붕괴보다 거품 누적이 문제다. 돈의 쓰나미에 핀셋 뒷북 땜질로 대응할 상황이 아니다.

정부대책이 작동하려면 두려움이 원칙을 훼손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가계대출을 예외 없이 (미래)소득과 탄탄히 연계시키는 것부터 시작하자. 보유세가 부담이 된다면 구멍을 뚫는 대신 납부유예나 물납을 활용하고, 빈집은 놀지 않게 하자. 양도소득세 때문에 이사를 못 간다면 미국처럼 유예제도를 도입하자. 주택 공급은 200만 호 건설의 마음가짐으로 임하되 공공의 지분을 확실히 챙겨 지속 가능성을 확보하자. 전세 문제도 결국은 집값이 너무 비싸 생겨난 것임을 잊지 말자.


하준경 객원논설위원·한양대 경제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