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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월적 세계를 엿본 자, 나인가 나비인가[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입력 | 2020-11-23 03:00:00

<24> 호접몽을 그리다



일본 에도시대 이케노 다이가가 그린 호접몽 그림. 눈을 감고 있는 장자와 주변의 나비를 묘사했다. 장자가 눈을 감고 있는 것을 볼 때 이것은 장자의 관점에서 그린 호접몽이다.


‘장자(莊子)’의 내용 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가 호접몽(胡蝶夢)이다. 장자가 나비가 되는 꿈을 꾸었는데, 막상 꿈을 깨어 보니 장자가 나비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장자 꿈을 꾼 것인지 모르겠더라는 그 유명한 이야기. 영화 ‘매트릭스’가 활용하기 이전부터 호접몽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을 매혹해 왔다. 호접몽에 견줄 만한 서양의 이야기로는 카프카의 ‘변신’을 들 수 있다. ‘변신’은 주인공 그레고르 잠자가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몽환적인 스토리의 대가 호르헤 보르헤스는 이 ‘변신’의 서두가 실제로 일어난 이야기라고 (믿는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보르헤스가 호접몽 이야기를 좋아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보르헤스는 1967년 하버드대에서 행한 강연에서 장자의 호접몽에 대해 언급한 적이 있다. ‘장자’에 나오는 이 꿈의 주인공은 다른 물건이나 동물이 아닌 꼭 나비여야 한다고 힘주어 강조했다. 장자는 나비에 대한 꿈을 꾸다가 깼는데, 그 꿈을 깬 이후에 정작 각성의 세계로 돌아온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꿈을 꾸지 않아도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은 상태가 되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바로 이 꿈같은 상태의 주인공이 되기에는 다른 존재보다 나비가 적합하다. 장자가 꾼 꿈의 주인공으로 타자기나 호랑이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보르헤스는 역설했다.

보르헤스가 보기에, 호랑이는 예술로 가닿을 수 없는 사물의 실제나 본성 같은 것을 나타내기에 적합한 존재이다. 보르헤스는 ‘또 다른 호랑이’라는 시에서 상징과 허상의 호랑이가 아니라 수마트라나 벵골을 누비며 교미와 빈둥댐과 살육을 태연히 행하는 호랑이를 동경하고 노래한 적이 있다. 그러한 호랑이에 비해, 나비는 섬세하고 사라질 듯한 존재. 즉, 나비는 꿈의 육화와도 같은 초월적 존재를 표상한다.

이러한 보르헤스의 말대로, 호접몽의 핵심은 꿈을 깬 직후에 있다. “장자가 꿈을 꾸어 나비가 된 것인지, 나비가 꿈을 꾸어 장자가 된 것인지 모르겠다(不知周之夢爲胡蝶與胡蝶之夢爲周與).” 인간은 별의별 꿈을 다 꾸고 살기에, 누군가 나비 꿈을 꾸었다는 사실 자체가 특이한 것은 아니다. 특이한 것은 그 꿈으로 인해서, 평소에는 생각하지 못했을 어떤 지점, 즉 자신을 나비의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지점으로 나아갔다는 사실이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장자의 관점과 나비의 관점을 모두 취할 수 있는 어떤 초월적 지점에 생각이 미쳤다는 점이 특이하다. 호접몽을 잘 음미하는 방법은, 호접몽이 결국 인간 장자의 꿈이었다고 서둘러 결론짓지 말고, 호접몽이 장자의 꿈인지 아니면 나비의 꿈인지 정말 모르겠다는 상태를 상상하고 공감해 보는 것이다.

그런 취지를 담으려면 나비 꿈을 꾸는 장자를 그리는 것으로는 부족하다. 중국 명나라 때 화가 육치(陸治)의 호접몽 그림이나, 일본 에도시대의 이케노 다이가(池大雅)의 호접몽 그림은 모두 눈을 감고 있는 장자와 그 주변의 나비를 묘사했다. 아쉽게도 이것은 장자의 관점에서 그린 호접몽이다. 꿈꾸는 주체는 어디까지나 눈을 감고 있는 장자인 것이다. 호접몽의 진짜 취지를 살리려면, 나비 역시 꿈꾸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나비의 눈을 감기기는 어렵다. 나비가 꿈꾸는 모습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 장자의 눈을 뜨게 하면 된다. 가쓰시카 호쿠사이(葛飾北齋)의 그림에서 “장자는” 나비를 보기 위해 눈을 뜨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장자는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니라, 나비의 꿈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남은 과제는 장자의 관점으로도, 나비의 관점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어떤 지점에서 호접몽을 그리는 것이다. 미래의 천재가 그 어떤 정체성에도 집착하지 않는 그야말로 초월적 지점에서 호접몽을 그려내기를 기대한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