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시 미국 국방장관을 지낸 로버트 게이츠의 회고록 ‘임무(The Duty)’에 따르면 이명박 대통령은 전투기를 동원한 보복을 계획했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만류로 대응수위를 낮췄다. 이동관 홍보수석은 자신의 회고록에 “연평도 상공까지 출격했던 F-15 전투기 2대를 활용해 보복하라는 이 대통령의 지시에 대해 군 관계자들이 ‘미군과 협의할 사안’이라며 행동을 주저했다”고 썼다. 출격한 F-15 전투기에는 공대지(空對地) 미사일도 달려 있지 않아 즉각 보복은 불가능했다.
▷이 대통령의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에 따르면 이 대통령은 당시 김태영 국방장관에게 “북한이 200발을 쐈다는데 우리는 왜 80발만 쐈느냐”고 질책했다. 그러자 김 장관은 “200발은 추정 수치이고 실제 육지에 떨어진 포탄은 70∼80발 정도로 추정돼 교전수칙에 따라 80발을 쐈다”고 답했다. 교전수칙이 예상하지 않은 민간인이 피해를 입었는데도 1 대 1 대응만 내세웠으니 답답한 국방장관이라 하겠다. 이후 대응사격은 3∼5배로 늘었다.
▷서 하사의 어머니 김오복 씨(60)는 10주기를 맞아 아들에게 쓴 편지에 “너를 생각하면 매일같이 마음이 아팠고 억울했고 그리웠다”며 “북한으로부터 사과 한마디 받아내지 못했는데 벌써 사람들에게 잊혀져 가고 있는 것 같아 미안하다”고 했다. 도발이 잊혀질 때가 위험한 때다. 북한이 핵전력을 갖춘 후의 도발은 한층 더 대담할 수 있다. 평화를 외치다 평화를 믿어버리는 우(愚)를 범하지 말자.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