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리한 현안엔 침묵, 반대진영 공격은 가혹
메시지 균형 깨지면 ‘편 가르기’ 국정 가속화

정연욱 논설위원
이런 혼선이 1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데도 두 사람을 임명한 문재인 대통령은 침묵하고 있다. 대통령의 공개적인 발언만 메시지가 아니다. 침묵도 메시지다. 같은 정부에서 있을 수 없는 이런 분란을 정리해야 할 당사자가 가만있으니 내전을 방임하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추 장관의 검찰 ‘힘 빼기’ 드라이브에 힘을 실어주면서도 윤 총장에게 “살아있는 권력도 수사하라”고 했던 명분도 모른 척할 수 없는 처지다. 사실상 직무상 책임을 피하려는 의도가 엿보인다.
문 대통령은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부동산 투기를 잡고 시장을 안정화시키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확고하다”고 말했다. 이후 9개월이 지난 지난달 국회 시정연설에서도 “부동산 시장 안정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단호하다”고 말한 뒤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정부가 대책을 내놓을 때마다 부동산 시장이 엇박자로 나가고 있으니 안정화 시점은 이제 기약도 할 수 없는 지경이다. 미증유의 ‘전월세 난민’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을 맞아 ‘더 기다려 달라’는 희망고문만 하고 있는 것이다. 당분간 정책기조 수정은 없으니 대통령의 침묵은 계속될 것 같다.
대통령의 침묵엔 굳이 이해관계가 얽힌 현안에 발을 담그면서 비난을 자초할 이유가 없다는 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을 것이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대통령은 희망과 미래, 단호한 메시지를 발신하는 정치적 자산으로 남겨두되 악역과 설거지, 책임은 정부와 여당이 떠맡는 역할 분담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여권은 대통령의 사과나 반성이 몰고 올 후폭풍을 더 우려하는 분위기다. 한번 정책 실패라는 낙인이 찍히는 순간 그동안 다져왔던 친문의 방어벽이 무너질 거라는 위기감이다. 노무현 정권이 ‘노사모’ 등 핵심 지지층과 맞서면서 정책 궤도를 수정한 결과 폐족(廢族)으로 전락한 트라우마도 작용하고 있다. 보수 세력에 맞선 강경 친문 지지층의 엄호가 절실한 이유다.
이 때문인지 문 대통령은 8월 광화문 집회를 주도한 보수성향 단체를 향해선 침묵을 깨고 ‘극히 몰상식한 일부’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광화문광장을 에워싼 차벽이 등장했고, 때 아닌 불심검문도 벌어졌다. 대통령비서실장은 ‘살인자’ 운운하며 비난 수위를 끌어올렸다. 민노총이 14일 주도한 집회에 대해 다소 의례적인 자제 요청만 한 것과 대조적이었다. 좌우를 뛰어넘어야 할 코로나 방역이 ‘정치 방역’으로 흘렀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대통령 메시지의 균형이 깨지면 ‘편 가르기’ 국정운영이 가속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