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정상회의에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가 회의 성과를 설명하고 있다. G20 정상회의 홈페이지 영상 캡처
임현석 카이로 특파원
8분간 이어진 그의 발언엔 ‘은둔의 석유 왕국’ 사우디를 국제무대 중심에 올려놓겠다는 야심과 포부가 담겼다. 이는 사우디가 아랍국가 최초로 G20 정상회의를 주최하면서 노린 효과이기도 하다.
이스라엘 언론은 무함마드 왕세자가 이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비밀리에 홍해 인근 도시 네옴에서 만났다고 보도했다. 사우디가 자국 영토에 이스라엘 총리 방문을 허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최근 이스라엘과 수교를 맺은 아랍에미리트(UAE) 등과 마찬가지로 사우디 역시 이스라엘과의 수교 논의에 착수했을 것이란 추측이 조심스레 나온다. 오랜 적성국인 이스라엘과 대화할 정도로 무함마드 왕세자가 국내외 중요 사안을 좌지우지하고 있음도 뚜렷하다.
가디언은 19일 무함마드 왕세자가 이끌던 사우디 반부패위원회가 개혁을 명분으로 2017년 왕실 고위 인사를 포함해 350명 넘게 부패 혐의로 리츠칼턴호텔에 구금하고 조사했을 당시 심문관이 폭력을 행사했다고 전했다. 국제앰네스티 등은 사우디에서 여성 운전이 금지됐던 2018년 이전에 여성의 운전 허용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수감된 여성 운동가들이 아직 풀려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국제 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 역시 “이번 회의는 인권침해 논란을 가리기 위한 연막”이라며 각국 정상에게 불참을 촉구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이날 “지속 가능한 세상을 만들자는 G20 회원국의 목표와 여성·청소년에게 21세기를 열어갈 기회를 제공하는 사우디의 ‘비전2030’ 구상이 일치한다”며 여성과 아동 권리를 언급했다. 하지만 그 해법이 교육 기회를 확대하고 경제 지원을 늘리겠다는 원론적 언급에 그쳐 아쉬움을 남겼다.
G20을 통해 국제무대에서 위상을 높이려던 사우디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문제를 속속 마주하고 있다. 탈석유, 양극화 해소, 국제무대에서의 위상 강화 등은 사우디를 포함해 중동 아랍 산유국이 모두 고민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이에 대한 제대로 된 해법을 내놓을 수 있을까.
임현석 카이로 특파원 lh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