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만에 새 앨범 ‘바람같은…’ 내

정 씨가 3년 만에 낸 신작 ‘바람같은 날을 살다가’(10일 발매)는 청자를 억새풀 가득한 언덕으로, 열두 개의 산책 코스로 이끈다. 괘종시계와 풍금 소리가 마치 핑크 플로이드의 소품처럼 정 씨의 가창과 뒤얽히는 첫 곡 ‘습관처럼’의 다락방을 나서자마자 ‘석별’부터 감정의 파고가 들이닥친다. 고품격 성인 가요의 진경이 펼쳐진다.
17일 만난 정 씨는 “1970년대엔 그저 무대가 신기하고 신나 노래했다면 이젠 가창력이 아닌 영혼을 전달한다는 느낌으로 노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13년 세월 동안 혈혈단신이었어요. 우울증도 겪었죠. 외로울 때면 센 강가를 거닐며 혼자 ‘Les feuilles mortes(고엽)’를 불렀죠.”
1992년 귀국해 2015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미술가이자 교수로 살았다. 최백호와 현 소속사(JNH뮤직) 이주엽 대표의 권유로 37년 만의 가수 복귀작 ‘37년’(2016년)을 냈다. 김동률이 소셜미디어에서 극찬하더니 선우정아는 ‘귀로’를 자기 공연의 앙코르에 불렀고 아이유는 ‘개여울’을 리메이크했다.
“‘37년’은 그저 좋은 기록물, 추억거리를 남기자는 생각으로 만들었던 앨범이에요. 제3의 예술세계가 열릴 줄은 몰랐습니다.”
‘바람같은 날을 살다가’ ‘다음 생엔 그냥 스쳐 가기만 해요’ ‘삶에 감사를’…. 신작엔 삶을 반추하는 진한 우수가 들어차 있다. 그러나 템포와 리듬감이 돋보이는 ‘너의 웃음’ ‘시시한 이야기’의 밝은 화풍이 균형을 잡는다.
“매일 아침부터 밤까지 노래했어요. 평생 가장 많이 연습하고 만든 앨범입니다.”
그는 “젊었을 때보다도 소리가 더 뻥뻥 잘 나와 어리둥절할 지경”이라고 했다.
“건강이, 여건이, 삶이 허락하는 한 노래할 거예요.”
정 씨를 대표하는 미술세계는 파리 야경 연작, 그리고 서울 야경 시리즈다. 이제 노래의 붓으로 인생의 야경을 칠해간다. 허허한 캔버스 위로 휘황하게 걸어간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