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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플래시100]속은 일본 상품 불매…겉은 우리 상품 쓰기 한마음

입력 | 2020-11-24 11:40:00

1923년 2월 16일






플래시백
1923년 2월 16일은 설날이었습니다. 28년 전 을미개혁으로 양력을 채택하면서 설은 이전 같진 않았지만 그래도 최대의 명절이었죠. 이날 경성에서는 남녀 수천 명이 참여하는 대규모 행진이 벌어질 참이었습니다. 참석자들은 한결같이 무명으로 만든 두루마기와 치마를 입고 ‘내 살림 내 것으로’ ‘조선사람 조선 것’ 표어가 찍힌 전단을 나눠주려고 했죠. 그러나 종로경찰서가 2일 전 ‘금지’ 통보를 하는 바람에 행진은 무산되고 말았습니다.


이처럼 물산장려운동은 일제가 강제 중단시킬 정도로 큰 잠재력을 지닌 실력양성운동이었죠. 원래 1920년 8월 평양에서 처음 시작됐지만 전국으로 확산된 때는 1923년이었습니다. 조선청년회연합회가 전해 12월 표어 현상공모 광고를 5차례 싣고 수상작을 발표하면서 여론에 불을 붙였습니다. 동아일보는 이듬해 1월 5일부터 연속 4일간 사설을 실으면서 불길 확산에 힘을 보탰죠. 이달 25일 조선물산장려회 창립총회가 열려 구심점이 생겼고요.

곧 경제자립과 소비절약 움직임이 들불처럼 번져나갔습니다. 물산장려회 자조회 자작회 토산장려회 같은 단체가 여기저기 생기고 금주 금연 바람이 불었죠. 유치원 꼬맹이들이 ‘토산장려’ 깃발을 들고 “우리는 우리 것을 먹고 입고 삽시다”라고 외쳤습니다. 기생들도 우리 옷감으로 옷을 해 입자고 결의했죠. 따르지 않으면 권번에서 제명하겠다고 했고요. 옷맵시가 영업수단인 기생들이 무명 치마를 입겠다는 것은 손실도 감수하겠다는 의지였을 겁니다. ‘경제의 3·1운동’이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죠.


강력한 물산장려운동 배경에는 토착기업 위기의식이 있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 일본이 불황에 빠졌고 1920년 회사령 폐지로 일본 기업들이 한반도로 건너왔죠. 1923년 4월 일제가 관세를 모두 없앤다는 소문이 돌자 토착기업가들은 기댈 곳이 없었습니다. 유일한 토산품이라고 할 옷감도 일제 자본에는 바람 앞의 등불이었죠. 돌파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입어라! 조선사람이 짠 것을. 먹어라! 조선사람이 만든 것을. 쓰라! 조선사람이 지은 것을’이었습니다. 슬며시 일본상품을 불매하고 우리 것을 쓰면 우리 기업이 성장할테니까요.

하지만 기세 좋던 물산장려운동은 1년 만에 꺾이기 시작했습니다. 나라도 정부도 없는 상태에서 자급자족 경제로 살 길을 찾으려는 방식은 일본 거대 자본에 역부족이었죠. 토착 방직업체도 일본산 실이 없으면 옷감을 짤 수 없었습니다. 손해 볼 것 없는 일제는 틈틈이 탄압하면서 지켜보았죠. 각지 물산장려 단체가 제각각 움직였던 것도 걸림돌이 됐습니다. 배를 불린 것은 일부 상인들뿐이었죠. 공급량이 적은 토산품 가격이 크게 뛰었기 때문입니다.


프롤레타리아 즉 무산자는 물산장려운동에 반대해야 한다는 사회주의자들의 공세는 내부의 장벽이었습니다. 물산장려운동이 잘 되면 일제 자본가 대신 토착 자본가들이 지배자가 된다는 논리였죠. 1923년 3월 말 열린 조선청년당대회에서는 ‘물산장려운동 타도’를 결의하기까지 했습니다. 보다 못한 연희전문 교수이자 마르크스주의자인 이순탁은 사회주의 혁명이 가능하려면 경제를 발전시켜 생산력을 먼저 높여야 하지 않느냐고 반박했습니다. 이 시기 동아일보는 물산장려를 둘러싼 이론투쟁에 지면을 아낌없이 내주었죠.


동아일보 1923년 2월 16일자 3면은 무산된 정월 초하루 물산장려운동 행사를 지면에서나마 상세하게 소개했습니다. 조선물산장려회 깃발과 휘장도 안내하고 선전지 문안도 그대로 옮겨 실었죠. 신문관과 한성도서주식회사가 6만 장에 이르는 선전지를 무료로 인쇄해 줬다는 기특한 소식도 담았습니다. 부산 군산 성천 등 지방의 물산장려 움직임도 생생하게 전했죠. 각지의 이런 정성 덕분에 물산장려운동은 1940년까지 명맥이 끊어지지 않았습니다.

이진 기자 leej@donga.com

원문


土産奬勵(토산장려) 今日(금일)부터 實行(실행) 自作自給(자작자급)
二千萬(2천만) 民衆(민중)의 一致合勢(일치합세)로 成就(성취)할 自活運動(자활운동)

◇내 살림 내 것으로◇
◇조선사람 조선 것◇


兩處(양처)의 大講演(대강연)
午後(오후) 二時(2시)에는 懇親會(간친회)
모히라 경운동 텬도교당에
잘 살기 위하는 형뎨자매여
講演會(강연회)는 午後(오후) 七時(7시)부터

오늘!오늘을 긔약하야 토산장려의 선전대행렬(宣傳大行列)을 하려든 장려회의 계획은 작보와 가치 경찰당국의 추상 갓흔 금지로 부득이 중지하게 되야 그 회의 회원 일동은 물론 선전 당일의 자세한 보도를 손곱아 긔다리든 일반 민중은 한가지로 섭々하게 녁이는 터이나 이 운동의 근본정신으로 말하면 단순한 행렬 갓흔 것이 아님으로 그 회에서는 원대한 압길을 위하야 이왕에 뎡하얏든 회원 간친회(懇親會)와 선전대강연(宣傳大講演)이나 대々뎍으로 하리라 하야 오늘 오후 두시에 경운동 텬도교당에서 먼저 간친회를 열고 이 운동의 끗을 아름답게 하기를 서로□ 맹서할 터이라는 바 이왕 입회한 회원은 물론 기타 일반 인사들도 각々 본목으로 두루마기와 치마를 하여 입고 한 사람이라도 더 만히 참석하여 주기를 바란다 하며 당석에서 그 회의 간부와 회원의 감상담도 잇슬 터이며 특히 언론계에서도 그 회의 성립과 아울러 장래를 축한다는 뜻으로 조선일보사(朝鮮日報社) 김병희(金炳僖) 씨와 본(本) 사댱(社長) 송진우(宋鎭禹) 씨의 축사가 잇슬 터이며 다시 오후 일곱시부터 텬도교당과 종로 중앙청년회관(中央靑年會舘)에서 선전대강연을 시작하야 토산장려의 굿세인 소리가 방々곡々에 사모치게 할 터이라는데 특히 전긔 두 군대의 장소는 무료로 빌린다 하며 등단할 연사는 모다 열 사람으로 다음과 갓다더라.
李昇薰(이승훈) 兪星濬(유성준) 薛泰熙(설태희) 李鍾麟(이종린) 朴勝彬(박승빈) 金弼秀(김필수) 李順鐸(이순탁) 金喆壽(김철수) 金弘植(김홍식) 李橿(이강)

行列禁止(행렬금지)에 憤慨(분개)
회원과 일반의 여론 비등
당초 계획은 엇더하엿나

당초에 선전행렬(宣傳行列)의 계획과 방식으로 말하면 본보에 수 차 보도한 바와 가치 운동의 정신을 말이나 글로 선전하기보다도 한 거름 나아가 실지로써 범(範)을 텬하에 보이고 실(實)을 동족에 구하려 하야 수천의 회원들이 남자는 주의를 여자는 치마를 각々 물들인 본목으로 지여입고 오후 두시에 시내 경운동 텬도교당(天道敎堂)에 모이어 회원간친회(會員懇親會)를 열고 가슴을 헤치어 이 운동의 완성을 긔약하자는 맹서로써 회를 마친 뒤에는 가슴에 그 회의 휘장(徽章)을 붓치고 조선악대(朝鮮樂隊)의 아름다운 고악(古樂)을 따라 팔도(八道)의 련합(聯合)을 의미한 여덜 폭으로 된 그 회의 회긔(會旗)와 각々 특산(特産)을 따라 지은 도긔(道旗)를 선두에 세우고 조선 백지에 박힌 그 회의 헌측(憲則)과 취지서(趣旨書)를 돌니는 동시에 간곡한 문구를 모아서 따로 박힌 수만 장의 선전지(宣傳紙)를 방々곡々 가가호호에 배포할 작뎡이엿스나 경찰당국의 무리한 압박으로 행렬은 중지케 된 것인대 이번 금지로 인하야 그 회원들은 물론이오 일반의 경잘에 대한 분개가 극도에 달하얏다더라.

行列禁止(행렬금지) 理由(이유)
세 가지 발표한 바
금일에 하랴든 선뎐행렬을 금지하는 리유라고 장려회 간부에게 발표한 바는 다음 세 가지라더라.
一(1)、이번 행렬은 옥외집회로 볼 수 잇는데 이것은 이전 경무총감(警務總警) 부령(府令)으로 허락지 안튼 것임으로 법령에 위반되는 것.
二(2)、요사이 가진 풍설의 돌아다니어 외국물품이나 사치품을 파는 장사들은 이 운동을 반대 하기 위하야 그날에 반대운동을 이르킨다는 것이 아조 무근한 소리라고 볼 수 업슴과
三(3)、모모 단톄의 사상이 근래에 자못 악화(惡化)되야 이번 행렬을 긔회로 불온한 사태를 이르킬 념려가 잇슴.

八道(팔도) 聯合(연합) 意味(의미)의
장려회 회긔
그 회의 회긔(會旗)는 별항과 가치 팔도를 의미하야 여덜 폭의 흰 명주로 하고 가에는 팔도의 특산을 쪼각□ 이어서 보기좃코 의미잇게 만든 것이라더라.

特色(특색) 잇는 八道旗(팔도기)
경긔도는 강화반포
여덜 개의 도긔(道旗)는 각 도의 특산으로 바탕을 하얏는데 단순한 가운데에 깁흔 의미가 잇스며 질소한 모양이 특별한 취미가 잇는 바 자세히 소개하면
▲京畿道(경기도)는 江華斑布(강화반포)로
▲慶尙道(경상도)는 安東葛布(안동갈포)로
▲全羅道(전라도)는 全州牛綃(전주우초)로
▲忠淸道(충청도)는 韓山細苧(한산세저)로
▲江原道(강원도)는 鐵原明紬(철원명주)로
▲黃海道(황해도)는 海州白木(해주백목)으로
▲咸鏡道(함경도)는 六鎭環布(육진환포)로
▲平安道(평안도)는 安州亢羅(안주항라)로
로 만든 것이라더라.

紫紬質(자주질)에 槿域圖(근역도)
장려회의 휘장

일반 회원들의 가슴에 붓칠 그 희의 휘장(徽章)은 붉은 명주에 삼천리강산인 우리 땅덩어리의 윤곽(輪廓)을 그리고 그 가운데는 조선물산장려회(朝鮮物産奬勵會)나는 일곱 글자를 박히엇다더라.

내 살림 내 것으로
수만 장의 선뎐서
일반에게 널니 배포할 선뎐지는 작년 조선청년회련합회(朝鮮靑年會聯合會)에서 현상으로 모집한 토산장려표어(土産奬勵標語)를 머리와 끗헤 박히어 일반에게 철저히 늣기어지도록 하얏는데 특히 디방 인사를 위하야 그 선전지의 원문대로 아래에 긔록하야 직접으로 그 선전지를 대하는 늣김이 잇게 하노라.

내 살님은 내 것으로
보와라. 우리의 먹고 입고 쓰는 것이 거의 다 우리의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엇다. 이것이 뎨일 세상에 무섭고 위태한 일인 줄은 오날이야 우리가 깨다랏다. 피가 잇고 눈물이 잇는 형뎨자매들아. 우리가 서로 붓잡고 서로 의지하야 살고서 볼 일이다. 입어라. 조선사람이 짠 것을. 먹어라. 조선사람이 만든 것을. 쓰라. 조선사람이 지은 것을.
京城府(경성부) 堅志洞(견지동) 八十番地(80번지)
朝鮮物産奬勵會(조선물산장려회)

조선사람 조선 것
調査部(조사부)의 活動(활동)
생산실력 조사코자

이와 가치 선전행렬의 준비를 진행하는 동시에 그 회의 조사부(調査部)에서는 이 운동의 목뎍을 완성할 방편으로 조선생산력(生産力)에 대한 완전한 통계표(統計表)를 꾸미기 위하야 조선산품 중으로 특산물(特産物) 제조품(製造品) 가공품(加工品)의 一(1)、産地(산지) 二(2)、品名(품명) 三(3)、數量(수량) 四(4)、價格(가격) 五(5)、生産者(생산자)의 住所(주소) 氏名(씨명) 六(6)、物品(물품)의 商標(상표) 등을 자세히 긔록하야 이달 안으로 보내여 달나는 통지서 일천여 장을 각 디방 주요한 은행 회사 공장 상뎜 기타 각종 단톄에 발송하얏다더라.

運動(운동)을 應援(응원)코자
상뎜 회사의 특지

이러케 오늘의 선전행렬을 만족하게 하려고 안으로 그 회 간부들의 연일 활동은 맹렬하얏스며 특히 밧그로 각 방면 인사의 다대한 도음이 잇서 오늘 준비에 보태여 쓰라고 금품(金品)의 긔부가 날마다 답지하얏스며 더구나 신문관(新文舘)과 한성도서주식회사(漢城圖書株式會社)에서는 오륙만 장의 인쇄물을 무료로 인쇄하얏스며 시내의 각 상뎜에서는 그 회의 운동을 찬성하며 선전행렬의 긔세를 성대케 하기 위하야 각々 조선 토산으로 축긔(祝旗)를 만들어 그 회에 긔부하얏다더라.

地方(지방) 各處(각처)
釜山(부산)의 奬勵熱(장려열)과
기생들의 열성

부산에서는 한번 토산장려회가 조직된 후로 대대뎍 선전을 하야 혹은 영주동(瀛洲洞) 유치원(幼稚園) 아해들의 손에 토산장려라 쓴 긔를 들고 입으로는 『우리는 우리 것을 먹고 입고 삽시다』 하면서 전 시가로 도라다니며 전 시민에게 무한한 감동을 주엇스며 또 부산부(釜山府) 봉래권번(蓬萊券番)에서는 수일 전에 총회를 열고 사십여명 기생이 결의하기를 우리도 이천만의 한 분자라 토산장려운동에 거저 잇슬 수 업술 뿐 아니라 음녁 정초부터는 우리 물건으로써 옷을 지어 입되 만일 이에 위반하는 자가 잇스면 그 벌로 권번기생이 아니라고 한다 하며 또 음력 정월 십삼사일은 권번에서 연극을 하는대 그 긔회에 토산장려의 선저지 만여 장을 인쇄하야 배부하리라더라(부산).

四團體(4단체)가 聯合(연합)하야
량산에도 대선전

지난 십일일 량산청년회(梁山靑年會) 부인회(婦人會) 소년단(少年團) 여자소년단(女子少年團)의네 단톄가 련합하야 오후 두시부터 네시까지 군악을 울니며 전 시가를 순회 행렬하얏는데 당일 참석한 회원은 백여명이오 그들은 모다 본목으로 옷을 지어 입고 각처에 선뎐문을 분포하고 수레에 조선 물품을 실고 각々 긔를 들고 선전하얏다더라(량산).

群山(군산) 妓生(기생)도 團結(단결)
토살장려와 단연

군산(群山) 보성예기치옥(普成藝妓置屋) 기생 십여명은 지나간 이월 십이일 오후 한시경에 당디 세심관(洗心舘)에서 토산장려(土産獎勵) 겸(兼) 단연회(斷煙會)를 조직하엿는대 토산장려에 대하야는 이후부터 새로 만드는 의복은 반드시 우리 토산품 이외는 사용치 안키와 만약 사용자가 잇스면 그 물품을 몰수하야 공々사업에 보충하기로 하엿고 단연은 본월 십삼일부터 시작하고 만일 담배를 먹는 자나 또는 가지고 잇는 때는 과태금(過怠金)으로 임원은 오원 회원은 일원식 그 회에 내엇다가 그 돈은 유익한 곳에 쓰기로 하엿다더라(군산).

禁酒禁煙(금주금연)
市日(시일)에 禁酒宣傳(금주선전)
성천 룡선리에서

평남(平南) 성천군(成川郡) 청년수양회々댱(靑年修養會々長) 김준규(金濬奎) 씨는 자긔의 사는 성천면 룡선리(龍仙里)에서 금주금연을 발긔하야 동리 사람 전부가 모다 실행하엿스며 담배대 오백여 개를 모와서 지난 십일々 본군 장날을 리용하야 사람이 가장 만히 모힌 승선교통(昇仙橋通)이란 곳에서 룡선리(龍仙里) 금주금연동맹회(禁酒禁煙同盟會)의 취지를 선뎐하얏다는대 일반 장군들도 모다 감동하야 당장에 담배대를 내어놋는 사람도 만하서 담배대가 천여개에 달하엿슴으로 여러 사람이 보는 압헤서 모다 태어 바리엇다더라(성천).

一年間(1년간) 煙草價(연초가)
三十九萬餘圓(39만여 원)
전남 순텬군에서
디세보다도 삼 배

전남(全南) 순텬군(順天郡) 농민련합회(農民聯合會)의 조사한 바에 의한즉 순텬군 호수가 이만일쳔륙백사십구호에 매호 매일 연초 소비를 오전 평균으로 일년을 계산하면 일개년 소비가 삼십구만오천구십사원 이십오전의 만흔 돈이라는대 그 고을에서 한해에 내이는 디세금 십이만원에 비교하면 삼배 이상이 된다더라(순텬).

達城(달성)의 禁酒(금주) 斷煙(단연)
칠십여명 회원이

경북(慶北) 달성(達城)군 북면(北面) 산격동(山格洞)에서는 모々 유지의 발긔로 단연금주회(斷煙禁酒會)를 조직하고 칠십여명의 회원을 모집하야 지난 삼일부터 일제히 단행한다는대 이와 가치 각처에서 조흔 일들이 이러나는 것은 경하할 일인 바 대구 부근으로서는 산격동이 둘재라더라(대구).

遂安(수안)에도 斷煙(단연)
수안군(遂安郡) 남뎡리(楠亭里)에서는 모々 유지의 발긔로 새해부터 단연동맹회(斷煙同盟會)를 조직하엿는대 회원이 발서 팔십여명에 달하얏다더라(수안).



현대문


토산장려 오늘부터 실행 자작자급
2천만 민중의 일치합세로 성취할 자활운동

◇내 살림 내 것으로◇
◇조선사람 조선 것◇


두 곳의 대강연
오후 2시에는 친목회
모여라 경운동 천도교당에
잘 살려고 하는 형제자매여
강연회는 오후 7시부터

오늘! 오늘을 기약해 토산장려의 선전대행진을 하려든 장려회의 계획은 어제 보도와 같이 경찰당국의 추상같은 금지로 부득이 중지하게 되어 그 회의 회원 일동은 물론 선전 당일의 자세한 보도를 손꼽아 기다리던 일반 민중은 한가지로 섭섭하게 여기는 터이다. 그러나 이 운동의 근본정신으로 말하면 단순한 행진 같은 것이 아니므로 그 회에서는 원대한 앞길을 위하여 기왕에 정했던 회원 친목회와 선전 대강연이나 대대적으로 하겠다고 해 오늘 오후 2시에 경운동 천도교당에서 먼저 친목회를 열고 이 운동의 끝을 아름답게 하길 서로 맹세한다고 한다. 기왕 가입한 회원은 물론 기타 일반 인사들도 각각 무명으로 두루마기와 치마를 해 입고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참석하여 주길 바란다고 하며 현장에서 그 회의 간부와 회원의 감상발표도 있을 예정이며 특히 언론계에서도 그 회의 성립과 아울러 장래를 축하한다는 뜻으로 조선일보사 김병희 씨와 본사 사장 송진우 씨의 축사가 있을 예정이다. 오후 7시부터 천도교당과 종로 중앙청년회관에서 선전 대강연을 시작해 토산장려의 굳센 소리가 방방곡곡에서 사무치게 할 의지라는데 특히 앞의 두 곳 장소는 무료로 빌린다고 하며 등단할 연사는 모두 10명으로 다음과 같다.
이승훈 유성준 설태희 이종린 박승빈 김필수 이순탁 김철수 김홍식 이강

행진 금지에 분개
회원과 일반의 여론 들끓어
당초 계획은 어떠했나

당초에 선전행진의 계획과 방식으로 말하면 본보에 여러 차례 보도한 것과 같이 운동의 정신을 말이나 글로 선전하기보다도 한 걸음 더 나아가 실제로 모범을 천하에 보이고 내실을 동족에게 구하려고 해 수천의 회원들의 남자는 두루마기를, 여자는 치마를 각각 물들인 무명으로 지어 입고 오후 2시에 시내 경운동 천도교당에 모여 회원 친목회를 열고 가슴을 열어 이 운동의 완성을 기약하자는 맹세로 회를 마친 뒤에는 가슴에 그 회의 휘장을 붙이고 조선악대의 아름다운 옛 음악을 따라 8도의 연합을 의미한 여덟 폭으로 된 그 회의 회기와 각각 특산을 따라 지은 도기를 선두에 세우고 조선 백지에 인쇄한 헌칙과 취지서를 배포하는 동시에 간곡한 문구를 모아서 따로 인쇄한 수만 장의 선전지를 방방곡곡 가가호호에 배포할 작정이었으나 경찰당국의 무리한 압박으로 행진은 중지케 된 것이다. 이번 금지로 인해 그 회원들은 물론이고 일반의 경찰에 대한 분개가 극도에 이르렀다고 한다.

행진 금지의 이유
세 가지 발표한 내용

오늘 하려던 선전행진을 금지하는 이유라고 장려회 간부에게 발표한 것은 다음 세 가지라고 한다.
첫째, 이번 행진은 옥외집회로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이전 경무총감 부령으로 허락하지 않던 것임으로 법령에 위반된다.
둘째, 요새 갖은 소문이 돌아다녀 외국물품이나 사치품을 파는 장사들은 이 운동을 반대하기 위해 그날에 반대운동을 일으킨다는 것이 아주 근거 없는 소리라고 볼 수 없다.
셋째, 모 단체의 사상이 근래에 자못 악화돼 이번 행진을 기회로 불온한 사태를 일으킬 염려가 있다.

8도 연합 의미의
장려회 회기

그 회의 회기는 별항과 같이 8도를 의미해 여덟 폭의 흰 명주로 하고 가장가리에는 8도의 특산을 조각 이어서 보기 좋고 의미 있게 만든 것이라고 한다.

특색 있는 8도기
경기도는 강화반포

여덟 개의 도기는 각 도의 특산으로 바탕을 했는데 단순한 가운데 깊은 의미가 있으며 수수한 모양이 특별한 취미가 있어 자세히 소개하면
▲경기도는 강화반포로
▲경상도는 안동갈포로
▲전라도는 전주우초로
▲충청도는 한산세저로
▲강원도는 철원명주로
▲황해도는 해주백목으로
▲함경도는 육진환포로
▲평안도는 안주항라로 만든 것이라고 한다.

자주질에 근역도
장려회의 휘장

일반 회원들의 가슴에 붙일 그 회의 휘장은 붉은 명주에 삼천리강산인 우리 땅덩어리의 윤곽을 그리고 그 가운데는 조선물산장려회라는 일곱 글자를 새겼다고 한다.

내 살림 내 것으로
수만 장의 선전서

일반에게 널리 배포한 선전지는 작년 조선청년회연합회에서 현상으로 모집한 토산장려표어를 머리와 끝에 인쇄해 일반에게 철저히 느껴지도록 하였는데 특히 지방 인사를 위해 그 선전지의 원문대로 아래에 기록해 직접으로 그 선전지를 대하는 느낌이 있게 한다.

내 살림은 내 것으로
보아라. 우리가 먹고 입고 쓰는 것이 거의 다 우리의 손으로 만든 것이 아니었다. 이것이 제일 세상에 무섭고 위태한 일인 줄은 오늘에야 우리가 깨달았다. 피가 있고 눈물이 있는 형제자매들아. 우리가 서로 붙잡고 서로 의지해 살고서 볼 일이다. 입어라 조선사람이 짠 것을. 먹어라. 조선사람이 만든 것을. 써라. 조선사람이 지은 것을.
경성부 견지도 80번지
조선물산장려회

조선사람 조선 것
조사부의 활동
생산실력 조사하기 위해

이와 같이 선전행진의 준비를 진행하는 동시에 그 회의 조사부에서는 이 운동의 목적을 완성할 방안으로 조선생산력에 대한 완전한 통계표를 만들기 위해 조선산품 중으로 특산물 제조품 가공품의 1. 산지 2. 품명 3. 수량 4. 가격 5. 생산자의 주소와 성명 6. 물품의 상표 등을 자세히 기록해 이달 안으로 보내 달라는 통지서 1천여 장을 각 지방 주요한 은행 회사 공장 상점 기타 각종 단체에 발송했다고 한다.

운동을 응원하기 위해
상점 회사의 특별한 지원

이렇게 오늘의 선전행진을 만족하게 하려고 안으로 그 회 간부들의 연일 활동은 맹렬했으며 특히 밖으로 각 방면 인사의 큰 도움이 있어서 오늘 준비에 보태 쓰라고 금품 기부가 날마다 답지했으며 더구나 신문관과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는 5만, 6만 장의 인쇄물을 무료로 인쇄했으며 시내 각 상점에서는 그 회의 운동을 찬성하며 선전행렬의 기세를 성대하게 하기 위해 각각 조선 토산으로 축기를 만들어 그 회에 기부했다고 한다.

지방 각처
부산의 장려 열기와
기생들의 열성

부산에서는 한번 토산장려회가 조직된 후로 대대적 선전을 해 혹은 영주동 유치원 아이들의 손에 토산장려라고 쓴 기를 들고 입으로는 ‘우리는 우리 것을 먹고 입고 삽시다’ 하면서 전 시가로 돌아다니며 전 시민에게 무한한 감동을 주었으며 또 부산부 동래권번에서는 며칠 전에 총회를 열고 40여 명 기생이 결의하기를 우리도 2천만의 한 명이라 토산장려운동에 그냥 있을 수 없을 뿐 아니라 음력 정월 초부터는 우리 물건으로 옷을 지어 입되 만일 이를 어기는 자가 있으면 그 벌로 권번기생이 아니라고 한다 하며 또 음력 정원 13, 14일은 권번에서 연극을 하는데 그 기회에 토산장려의 선전지 만여 장을 인쇄해 배부할 계획이라고 한다(부산).

4개 단체가 연합해
양산에도 대선전

지난 11일 양산청년회 부인회 소년단 여자소년단의 4개 단체가 연합해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군악을 울리며 전 시가를 순회 행렬했는데 그날 참석한 회원은 백여 명이요 그들은 모두 무명으로 옷을 지어 입고 각지에 선전문을 배포하고 수레에 조선 물품을 싣고 각각 기를 들고 선전하였다고 한다(양산).

군산 기생도 단결
토산장려와 금연

군산 보성예기치옥 기생 10여 명은 지난 2월 12일 오후 1시경에 이곳 세심관에서 토산장려 겸 금연회를 조직하였는데 토산장려에 대해서는 이후부터 새로 만드는 의복은 반드시 우리 토산품 이외는 사용하지 않기와 만약 사용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 물품을 몰수하여 공공사업에 보충하기로 하였고 금연은 이달 13일부터 시작하고 만일 담배를 피우는 자나 또는 가지고 있는 때는 과태료로 임원은 5원, 회원은 1원씩 회에 냈다가 그 돈은 유익한 곳에 쓰기로 하였다고 한다(군산).

금주 금연
장날에 금주 선전
성천 용선리에서

평남 성천군 청년수양회 회장 김준규 씨는 자신이 살고 있는 성천면 용선리에서 금주 금연을 발기해 동리 사람 전부가 모두 실행했으며 담뱃대 500여 개를 모아 지난 11일 군 장날을 이용해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인 승선교통이란 곳에서 용선리 금주금연동맹회의 취지를 선전하였다는데 일반 장꾼들도 모두 감동해 당장에 담뱃대를 내어놓는 사람도 많아서 담뱃대가 1000여 개에 이르렀으므로 여러 사람이 보는 앞에서 모두 태워버렸다고 한다(성천).

1년간 담뱃값
39만여 원
전남 순천군에서
지세보다도 3배

전남 순천군 농민연합회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순천군 호수가 2만1649호에 각 가구 매일 담배 소비를 오전 평균으로 1년을 계산하면 1년 소비가 39만5094원 25전의 큰돈이라고 하는데 그 고을에서 한 해 내는 지세 12만 원과 비교하면 3배 이상이 된다고 한다(순천).

달성의 금주 금연
70여 명 회원이

경북 달성군 북면 산격동에서는 모 유지의 발기로 금주 금연회를 조직하고 70여 명의 회원을 모집해 지난 3일부터 일제히 단행한다는데 이와 같이 각지에서 좋은 일들이 일어나는 것은 축하할 일이며 대구 부근에서는 산격동이 두 번째라고 한다(대구).

수안에서도 금연
수안군 남정리에서는 모 유지의 발기로 새해부터 금연동맹회를 조직했는데 회원이 벌써 80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수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