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삼겹찜(왼쪽). 이윤화 씨 제공
이윤화 음식평론가·‘대한민국을 이끄는 외식 트렌드’ 저자
한번은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먹고 싶은 음식을 돌아가며 이야기하기로 했다. 머릿속에 수백 가지 음식이 오가니 결정 장애를 이겨내야 하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멤버 중 일본인은 라멘, 영국인은 동네에서 만든 맥주 한 잔을 꼽았다. 생애 마지막 음식들은 모두 의외로 소박하고 가장 익숙한 것들이었다. 나의 선택 역시 충청도 출신 어머니가 어릴 적 해준 늙은 호박 김치찌개였으니 말이다.
이처럼 마음의 휴식 같은 음식들이 있는 주점을 발견했다. 서울 옥수동 조용한 골목 모퉁이에 ‘부부요리단’이라는 특이한 상호의 네온사인이 눈에 띈다. 말 그대로 부부가 운영하는 집이다. 메뉴명은 얼핏 평범해 보이는데, 막상 요리 구성을 보면 정성과 디테일이 남다르다. 묵은김치볶음, 들깨나물무침, 참외장아찌 등 여덟 반찬을 담은 트레이부터 손님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킨다. 문어삼겹찜은 부드러운 문어와 쫀득한 제주삼겹살의 씹는 맛이 환상인데, 거기에 직접 담근 다섯 가지 장아찌 쟁반은 눈빛을 흔들리게 한다. 딱 한 잔만 하려던 이의 결심은 베를린 장벽처럼 이내 무너진다.
인생 파트너이자 동료인 김수정 셰프는 롯데호텔 일식당 모모야마에서 오랜 경력을 쌓았다. 부부요리단에 가면 홀에서 서빙과 음식 설명을 하다가 주방 안으로 들어가 요리와 뒷정리까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김 셰프를 만날 수 있다. 이들은 아침에 눈 뜨며 “오늘은 뭘 할까”를 상의하고, 잠들기 전 내일은 무슨 요리로 바꿀까 고민하며 은밀한 작전을 짜고 있음에 틀림없다.
단골손님인 음악가 강승원 씨는 이곳을 엄마의 자궁 같은 요릿집이라고 한다. 그에게 생애 마지막으로 가고 싶은 술집은 바로 이곳이 아닐까.
이윤화 음식평론가·‘대한민국을 이끄는 외식 트렌드’ 저자 yunal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