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그라인더 덕후’ 이승재 씨(50)는 직접 갈아 마시는 커피 맛에 빠져 한때 수동 그라인더 3000여 점을 갖고 있었다. 현재는 일부를 처분해 약 1600점을 소장 중이다. 놓아둘 공간이 부족해 서울 중구의 도움을 받아 지하철3호선 동대입구역 근처에 전시관이자 카페 ‘말베르크(Malwerk)’를 만들어 그라인더의 매력을 알리고 있다. 말베르크는 독일어로 그라인더 핵심 부품인 ‘원뿔형 분쇄추’를 뜻한다.
최근 말베르크에서 만난 이 씨는 “콜라만큼 세계적 음료가 된 유럽 커피의 역사는 그라인더를 보면 된다. 프랑스 자동차회사 푸조도 원래 그라인더를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물론 저도 바쁠 땐 전동 그라인더를 쓴다”며 웃었다. 그에게 그라인더 ‘입덕(덕후 입문)’ 이야기와 구매 및 관리법 등을 들어봤다.
“국회의원 비서관을 하다 1998년 독일로 사회학 공부를 위해 떠났다. 정작 사회학 대신 바이오매스 산업에 눈을 떠서 2005년 관련 사업체를 냈다. 거주하던 도르트문트는 석탄과 철광이 많이 나는 공업지대였는데 벼룩시장에 수동 그라인더가 많았다. 인테리어용으로 하나둘 사들였다. 2012년 알고 지내던 독일 어르신의 18세기 수집품 여러 점을 1800만 원에 산 것이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멍 때리면서’ 커피콩을 갈면 근심걱정이 사라진다.”
―주요 수집품을 꼽는다면….
“푸조가 만든 1840년 제품, 2차 세계대전이 막 시작된 1939년 버려진 포탄과 탄피로 만든 독일제 황동 그라인더, 1900년대 초 가정용 벽걸이형 그라인더, 독일 레나츠(LEHNARTZ)사 시리즈가 있다. 1차 세계대전 때 제작된 보리차용 그라인더도 있다.”
―주로 어디서 구매하나.
“2018년 귀국 전까지는 유럽의 벼룩시장에서 주로 샀다. 관광지 인근의 벼룩시장 말고 소도시의 깊숙한 장터에 가면 ‘진짜 물건’들이 많다. 2010년대 들어 중국인들이 그라인더를 찾으면서 물건이 꽤 줄었다. 요즘엔 e베이 같은 온라인사이트에서 주요 판매자를 찾는다. 유럽이나 미주 국가의 웬만한 제품은 다 있는데 포르투갈 제품만 아직 못 찾았다.”
―입문자를 위해 추천한다면….
―그라인더는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
“주기적으로 생쌀을 한줌씩 넣고 커피 대신 갈아주면 좋다. 그러면 커피 찌꺼기가 나오는 게 보인다. 쌀 자체에 지방을 제거하는 성질이 있다. 습기 있는 데에 보관하지 말고, 안 쓸 때는 그라인더 안에 방습제를 넣으면 녹스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김기윤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