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하다는 착각/마이클 샌델 지음·함규진 옮김/420쪽·1만8000원·와이즈베리

하버드대 대형 강의실에서 강의하는 마이클 샌델. 그는 ‘공정하다는 착각’을 통해 “열린 세계에서의 성공은 교육, 즉 세계 경제환경에서 경쟁하고 이길 수 있는 능력을 갖추는 데 달려 있다”며 “각국 정부가 교육 기회를 반드시 균등하게 관리해야 함을 뜻한다”고 역설한다. 김영사 제공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의 키워드를 뽑자면 공정이 아닐까 싶다. 공정하지 못한 경쟁은 국민의 분노를 일으키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공정’이란 말이 자주 들리는 요즘”이라는 추천사가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면 이 책을 읽으며 고민할 필요가 있겠다.
2010년 책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당신은 고장 난 기차를 운전하고 있다. 5명이 있는 A선로와 1명이 있는 B선로 중 어떤 방향으로 기차를 틀 것인가’라는 잔인한 딜레마로 한국 사회에 정의 열풍을 일으킨 저자가 이번에는 공정이라는 주제로 다시 한번 논쟁거리를 던진다.
저자는 ‘미국판 스카이캐슬’로 알려진 미국 명문대 부정 입학 사건을 중심으로 능력주의의 환상을 부순다. 유명 입시 상담사 윌리엄 싱어가 할리우드 스타들의 자녀를 위해 시험 감독관들에게 돈을 찔러주고 답안지를 조작한 사건이다. 거액의 기부금을 내고 입학하는 ‘뒷문’에 더해 부정 입학이라는 ‘옆문’이 널리 퍼진 현실은 공정이 무너진 미국의 단면이라는 얘기다. 저자는 “공정성 관점에서는 뒷문과 옆문을 구분하기 어렵다. 둘 다 부자 부모를 둔 청소년이 더 나은 지원자가 되게끔 했으며 능력보다 돈이 앞선 사례”라고 꼬집는다.
저자는 특히 엘리트층에 대한 분노가 민주주의를 위험하게 만들 때 능력에 대한 환상을 더 논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력으로 성공했다’고 환호하는 승리자와 ‘지원받지 못해 실패했다’고 분노하는 패배자가 양극화하면서 포퓰리즘을 불러일으킨다는 것. “세계화의 패자들이 왜 그토록 악에 받쳤는지, 왜 그토록 권위적인 포퓰리스트에게 빠져들었는지 쉽게 이해할 수 있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삶을 새롭게 정립시키기 위해서는 사회적 결속력과 존중의 힘이 얼마나 약해졌는지를 제대로 깨달아야 한다”며 독자에게 해법을 촉구한다. 한국에서 벌어지는 공정 논쟁의 해법 역시 한국 독자들이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