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지역의 재물운 가른 핵심 요인은 수세(水勢) 자족형 신도시로 성장한 ‘장터 분당’, 탄천이 부의 원천 베드타운 수준에 머문 ‘농촌 일산’, 정발산의 기운 활용해야
남북으로 길쭉하게 뻗은 분당신도시 전경. 동아DB
1990년대 초 수도권 1기 신도시로 출발한 경기 성남시 분당과 고양시 일산도 올해로 30년 역사를 꽉 채워가고 있다. 한때 ‘천당 아래 분당’ ‘천하 제일 일산’으로 불리며 쌍벽을 이루던 두 도시였지만, 30년이 지난 현재 그 위상은 크게 다르다. 여기에도 지운의 ‘30년 법칙’이 작용했기 때문일까.
동양의 상수철학(象數哲學)에서도 3, 30, 300 등의 수는 변화를 일으키는 ‘신성한 숫자’로 본다. 작심삼일(作心三日)이란 말도 3일이 지나면 변화가 생긴다는 표현이다. 특히 30년은 지운(地運)의 변화를 살펴보는 기본적인 ‘시간 단위’로 활용된다. 땅의 기운은 30년이 꽉 차고 나면 변화가 일어나고, 새로 30년 주기를 시작하면 더 발전적으로 진화하거나 반대로 쇠퇴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분당과 일산은 어떻게 될까.
● 장터 분당과 농촌 일산의 예고된 미래
광주산맥의 두 산줄기가 동서 양쪽에서 허리춤처럼 두르고 있는 분당은 예전부터 교통 요지였다. 서울과 영남 지방을 연결하는 영남대로가 있던 이 지역은 일찌감치 낙생역, 판교원 등 먼 길을 오가는 사람들의 교통수단과 쉼터가 마련돼 있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곳답게 일찌감치 상권이 발달했다.
분당이라는 이름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분당은 일제강점기에 광주군 돌마면의 분점리(盆店里)와 당우리(堂隅里)를 합쳐 지어졌다. 분점리는 질그릇인 동이를 팔던 옹기점들이 있던 마을이고, 당우리는 불당 서낭당 등 당집이 들어선 동네였다. 주막과 장터 등이 들어서 조선 후기까지만 해도 매우 번창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기찻길인 철로에 밀려 한참 주춤했고, 광복 후에도 그린벨트에 묶여 개발이 더뎠다. 박정희 전대통령이 헬기를 타고 지나다 “앞으로 긴요하게 쓸 땅이니 개발하지 말라”고 했다는 에피소드도 있다.
그러던 분당은 1기 신도시로 개발되면서 눈부신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서울 강남과 가까운데다 판교 테크노밸리와 인접해 있어 지속적인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른바 ‘자족형 신도시’에 걸맞은 조건을 갖췄다는 것이다. 지운이 제대로 발동한 셈이다.
반면 일산은 역사적으로 전형적인 농촌지역이었다. 신도시로 바뀌기 전 대부분 절대농지였던 이곳은 일산평야로 불렸고, 지역주민의 50%가 농업에 종사하는 농민들이었다. 일산은 바로 옆에 한강을 두고 있어 장마철만 되면 침수가 되는 저지대인데다, 북한 침략에 대비한 군사 시설이 많다는 이유로 신도시 지정 때까지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신도시가 조성된 이후 한때 분당보다 높은 녹지율을 가진 쾌적한 전원도시로, 또 남북통일시대의 미래 성장도시로 주목받으며 분당과 어깨를 겨뤘다.
● 분당, 탄천의 기운으로 재물 얻기에 유리
분당신도시의 부의 원천인 탄천. 동아DB
● 일산, 마두산의 지기 활용한 문화예술도시로 거듭나길
계획도시로 설계된 일산신도시 전경. 동아DB
일산신도시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정발산. 산자락 아래로 단독주택 단지가 들어서 있다. 동아DB
일산은 이와 반대다. 주변에 낮은 구릉성 산과 도시 중앙의 정발산(86.5m)을 제외하면 전체가 평탄한 지형이고, 제대로 된 물줄기는 없다. 도촌천, 한산천, 한류천 등 자그마한 개울이 있으나 서로 합수되지 못한 채 제각기 흘러 남쪽의 한강으로 빠져나간다. 도시의 물길이 한 데 모이지 못해 수량이 적은 데다, 한강도 일산신도시를 포근하게 감싸주지 못한 채 파주 쪽으로 곧장 빠져나가는 모양새다. 결국 물줄기가 일산신도시 전체의 부를 키우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일산의 주변 산들 역시 바람막이 역할을 해주지 못한다. 찬바람이 부는 겨울이 유독 춥게 느껴지는 이유다. 방풍이 잘 되지 않는 일산은 높은 빌딩과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는 도시건축 시스템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일산은 주거 환경이 매우 쾌적하다. 드넓은 평지에 위치했다는 점 때문에 분당보다 아파트 동간 거리가 넉넉하고, 호수공원 등 접근성이 높은 공원들이 곳곳에 있다. 1980년대 젊은이들이 즐겨 찾았던 애니골 카페촌 등 문화적 명소도 많다. 서울로의 출퇴근 문제만 없다면 평생 살고 싶은 정도로 주민들의 주거 만족도가 높은 곳이다.
일산을 상징하는 호수공원. 동아DB
안영배 논설위원oj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