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과 싸우다 괴물 되지 말라’ 독재와 싸우다 독재에 물든 文정권 食言·말 뒤집기·궤변·안면 몰수… 尹징계·신공항·공수처로 폭주
박제균 논설주간
2020년 대한민국의 집권세력에게서 그런 괴물의 모습을 본다. 독재라는 괴물과 싸우다가 자신도 모르게 독재에 물든. 목적을 위해서라면 모든 수단을 합리화한다는 좌파 운동권 논리가 체화(體化)된 그들. 권력을 쥐고서도 ‘목적이 수단을 합리화한다’는 위험한 비민주적 도그마에 사로잡혀 폭주하고 있다.
그런데 그 목적이란 게 뭔가. 말이 좋아 ‘주류세력 교체’지, 이미 입법 사법 행정 3권을 사실상 장악하고 주류세력 교체를 이룬 터에 걸리적거리는 거라면 뭐든 휩쓸어 버리고 가겠다는 식으로 내달리는 이유는 한 가지로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한번 잡은 권력을 결단코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는 지독한 권력욕. 문재인 대통령이 이 땅에 만든 ‘한번도 경험 못한 나라’를 이대로 쭉 끌고 가겠다는 것이다.
지금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아수라장도 ‘문파 장기집권’의 탄탄대로를 까는 데 돌멩이처럼 삐죽 튀어나와 걸리적거리는 사람을 쓸어버리고 가려다 일이 커진 것이다. 아무리 문 대통령이 직접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해서도 엄정하라’고 했다고 감히 손을 대다니…. 알아서 기지 않는 검찰총수처럼 ‘아름답고 평화로운 문재인 나라’를 세우는 데 거슬리는 존재도 없을 것이다.
이미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는 사실상 멈췄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인사로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수사팀은 공중분해됐다.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와 라임 옵티머스 등 정권의 개입 연루 의혹 사건들의 수사는 권력의 입김으로 고사(枯死) 직전이다. 그런데도 허울뿐인 모자를 쓴 윤석열을 찍어내 다른 검사들도 감히 산 권력을 들여다볼 엄두를 내지 못하게 하려다 이 난장(亂場)을 벌이고 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추 장관이 내세운 윤 총장 징계 및 직무정지 사유가 너무 졸렬하다. 첫째로 든 중앙일보 사주와의 부적절한 접촉은 윤 총장이 서울중앙지검장 때 일이다. 그때야말로 윤석열이 날이 시퍼런 칼을 휘두르며 정권이 내린 적폐청산 임무를 충실히 수행할 때. 오죽 딱 떨어지는 건수가 없으면 자신들이 ‘충견(忠犬)’으로 부릴 때 일부터 첫째로 들이민 것이다. 다른 사유들도 없어 보이긴 매한가지지만.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대통령이 침묵을 깨라, 직접 나서서 해결하라는 시각도 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과연 제3자로 심판할 자격이 있나. 윤석열이라는 칼로 적폐청산의 칼바람을 일으키고, 산 권력에 엄정하라고 영혼 없는 립 서비스를 한 뒤, 진짜 산 권력에 손대자 추미애를 ‘상전’으로 세워 윤석열의 손발을 묶은 사람이 누군가. 오늘 대한민국에서 벌어지는 막장 드라마의 각본가이자 연출가는 바로 대통령이다.
독재란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민주적 절차를 무시하고 수단을 가리지 않는 통치 행태를 말한다. 윤석열 징계 사태와 신공항 사달을 보라. 더구나 ‘야당의 비토권 보장’을 공수처(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탄생의 핵심 명분으로 내세운 뒤 이번에는 법을 바꿔 비토권을 빼앗겠다는 무도한 정치가 독재 아니고 뭔가.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폭력과 다를 바 없다.
박제균 논설주간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