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중국에서는 체육관, 은행, 식당, 쇼핑몰 등 웬만한 건물에서는 반드시 입장 확인 QR코드를 스캔해야 한다. 문제가 없으면 ‘통과’라는 소리가 나고,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여지없이 사이렌이 울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라는 명분으로 14억 중국 국민 전체가 이런 식으로 QR코드 통제 체제하에 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이 같은 QR코드 통제 방식을 전 세계로 확대하자고 주장했다. 시 주석은 21일 주요 20개국(G20) 화상회의에서 여행객의 신상정보와 코로나19 진단 결과, 최근 방문지 정보 등을 QR코드를 통해 공유하면 국경 이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중국 내에서는 이동 때마다 QR코드만 제시하면 장거리 여행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
그런데 시 주석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중국 정부 차원에서 QR코드 글로벌 확대를 시작했다. 중국 정부는 다른 나라와 협의 없이 한국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프랑스 등에서 들어오는 입국자에 대해 다음 달 1일부터 비행기 탑승 전 중국 QR코드 발급을 의무화했다. 이게 없으면 중국에 입국할 수 없다. 아직 중국에 입국하지도 않은 외국인에게 그들의 개인정보를 고스란히 내놓으라는 얘기다.
다른 나라들이 코로나19 방역에 정신없는 사이 중국은 방역을 앞세워 민감한 내용의 국제 기준 제정까지 강행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경제 회복, 여행 정상화 등을 기대하며 이런 중국식 통제에 공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로 생명과 안전이 크게 위협받는 상황이라면 개인에 대한 통제를 강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유를 제한하는 것은 그 어떤 경우에라도 까다로워야 하고 최소한이어야 한다. 반대 목소리를 듣지 않는 중국식 통제는 적절하지 않다. 코로나19 시대에 우려되는 점 중 하나는 너무나 당연시되는 자유주의의 후퇴다.
김기용 베이징 특파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