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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달릴때마다 당신의 심장 뛰는걸 느껴요”

입력 | 2020-11-30 03:00:00

장기 기증받고 건강회복한 40명
기증자 유족들에 감사의 편지
“누군가의 슬픈 결심 너무 잘알아… 나도 은혜 갚으려 장기기증 서약”



전격성 심근염으로 인해 2년 전 심장을 이식받은 서모 씨가 쓴 편지. 편지에는 심장을 기증한 이와 그 유족들에 대한 감사함이 가득하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제공


“찾아뵙고 절이라도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편지라도 쓸 수 있어 다행이에요.”

주부 이모 씨(32)는 최근 정성스레 편지 한 통을 썼다. 딸 리원 양(4)에게 간을 기증하고 세상을 떠난 장기기증인의 가족에게 쓴 글이다. 리원 양은 생후 78일 ‘담도폐쇄증’이란 희귀 난치병 진단을 받고 큰 수술과 입원 치료를 해왔지만 절망적이었다. 그러던 중, 2017년 7월 기증받은 간 이식 수술을 받고 건강을 되찾았다. 평생 관리를 받아야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감사하다.

하지만 그동안 이 씨는 기증자의 유족들에게 어떤 감사 인사도 할 수 없었다. 현행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은 장기 매매 등의 위험을 막기 위해 기증자와 이식인 사이의 교류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명의 은인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를 전하고 싶은 것도, 떠난 가족에게 이식 받은 이들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한 것도 모두 인지상정.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는 이런 갈증을 풀기 위해 장기기증 대상자나 가족들이 기증자 유족들에게 편지를 쓰는 ‘나의 영웅, 고맙습니다’ 캠페인을 진행했다. 본부 관계자는 “6월부터 4개월 동안 이 씨를 포함해 40명이 편지를 보내왔다”고 밝혔다.

편지들엔 절절한 고마움이 가득하다. “맑은 공기를 마시며 달릴 때 기증자의 심장이 힘차게 뛰는 것이 느껴집니다. 가끔 ‘우리가 이식인과 기증인으로 만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하고는 해요. 그때도 기증자님은 저를 도와주시는 영웅이셨겠죠.” 2018년 8월 심장을 이식받은 서모 씨는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마냥 기쁘다고 말하기 어려운 복잡한 속내도 엿보인다. 장기기증 덕에 새 생명을 얻었지만, 기증자 쪽에선 안타까운 죽음과 마주했단 뜻이기 때문이다. 또 다른 심장을 이식받은 이는 “이식을 받던 날, 누군가의 슬픈 결심이란 걸 알기에 마냥 기쁘지는 않았다”며 “그저 감사한 마음을 표현할 길이 없어 나 자신도 장기기증을 서약했다”고 썼다.

현행법상 이 편지는 유족들에게 직접 전달되진 않는다. 2015년 뇌사로 장기를 기증하고 떠난 딸을 둔 신경숙 씨(53·여)는 최근 이 ‘수취인 불명’ 편지들을 보고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신 씨는 “기증 받은 분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너무 궁금하다. ‘잘 지낸다’ 한마디만 들어도 ‘장하다, 우리 딸. 네가 생명을 살렸다’고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현재 국회에는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 등이 장기기증 가족들이 서로 편지라도 주고받게 허용하자는 법률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김소정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홍보국장은 “미국 등은 장기기증자와 유가족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관련 기관을 통해 서로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다”고 전했다.

해당 편지들은 다음 달 4일부터 본부 홈페이지에 ‘온라인 편지 전시회’로 공개된다. 편지 모음집은 누구나 신청하면 무료로 받아볼 수 있다.

김소영 기자 ks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