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야당이 예타 면제법 먼저 발의… 대안은커녕 위기감도 부족해”[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입력 | 2020-12-01 03:00:00

국민의힘 최연소 당협위원장 박진호




박진호 위원장은 “우리가 김영삼(YS) 전 대통령을 배출했는데 왜 민주화를 민주당의 전유물로 뺏겼는지 안타깝다”고 말했다. 국민의힘이 왜 민주화에 기여를 한 정당으로 인정받지 못하는지 국민의힘 구성원들은 고민해 봤을까. 뒷 문구는 국민의힘이 국회 회의실에 건 백보드로 2013년 9월 박근혜 정부의 채동욱 검찰총장 찍어내기 직후 문 대통령이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이진구 논설위원

《올 6월 1일 국민의힘 김종인 지도부가 국립현충원 참배를 시작으로 공식 업무에 들어갔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보수만 말하는 정당은 살아남을 수 없다” “쇄신에 불만이 있어도 시비 걸지 말라”고 기염을 토했다. 그로부터 6개월. 국민의힘 안팎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은 “왜 그렇게밖에 못 하느냐”다. 박진호 김포갑 당협위원장(31·전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은 “총선 패배 후 당을 안정시키는 데 더 주력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당 원내대표실 부실장이기도 한 그는 지난해 11월 직을 걸고 인적 쇄신을 요구한 6인의 원외 당협위원장 중 한 명이다.》

―다시 묻고 싶은데… 국민의힘이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말이 많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런 말을 하는데… 총선 패배 이후 흔들리는 당을 안정시키는 데 주력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그래도 김종인 위원장이 광주 국립5·18민주묘지 추모탑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하고, 경제3법을 지지하는 등 기존의 당 입장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까… 지금 당무감사가 진행 중인데 나도 지금까지 받아본 것 중 가장 힘들게 치렀다. 결과가 나오면 아마 그동안 준비한 쇄신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신호탄이 되지 않을까 한다.”

※ 김 위원장은 8월 19일 광주를 방문해 전두환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 참여,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당내 일부 인사들의 망언에 대해 “부끄럽고 또 부끄럽고,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고 사죄했다. 그러나 개인 차원이지 당 차원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김 위원장이 민주당에 있을 때는 이해찬 정청래 의원을 공천 탈락시키는 칼을 들었는데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그때와 차이가 있는 건 사실이다. 과거에 수시로 발생하던 망언이나 실수가 줄기는 했지만 당 차원의 과감한 내부 개혁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아쉬운 게, 야당의 힘은 결국 국민의 지지에서 나온다. 국민이 신뢰하지 않는 야당이 아무리 정부여당을 공격한들 힘이 붙을 리가 없지 않나. 청와대와 여당이 우리를 무시하는 것도 우리 뒤에 국민이 없다는 걸 그들이 알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의 실정을 신랄하게 공격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지금까지 못 한 사과와 반성을 하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도 지면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사과와 자성에 부정적인 시각이 여전히 당내에 있지 않나.

“자성, 혁신 단어만 나오면 단골로 등장하는 말이 있다. 아군 등에 칼 꽂는다, 적 앞에서 우리끼리 분열하면 안 된다, 왜 이제 와서 생뚱맞게 그러느냐 등등. 늘 나오는 말인데 거의 100% 먹힌다. 쇄신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분열로 선거에 졌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조금 외치다 만다. 올 총선만 해도 조국 사태 등 정부여당의 실정으로 야당 바람이 불 줄 알았다. 나도 그런 말을 하고 다녔으니까. 그런데 결과는…. 정부여당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분명히 있지만 그 민심이 우리를 지지하는 데까지는 오지 않고 있다. 이유는 분명한 거고.”

―비대위가 혁신 차원에서 정강정책에 4선 연임 금지를 넣겠다고 초안을 발표했는데 당내 반발로 철회했다.

지난해 11월 국회 정론관에서 당 혁신을 요구하는 박진호(가운데) 등 당시 자유한국당 원외 당협위원장들.

“그랬다. 언론에서 잘해 보라고 사설까지 써주며 호평을 했는데…. 사실 3선이든 4선이든 지금 의원들은 모두 초선으로 간주해주는 안이었다. 그래서 다음 총선이 아니라 12년 후인 2032년부터 적용되는 거다. 그마저도 정강정책을 의결하는 상임전국위원회에 올라가지도 못했다. 반발이 심해서. 전부 그 이상 하고 싶은 거지.” (김 위원장은 왜 밀어붙이지 않은 건가.) “그런 게 좀 아쉽다. 국민 앞에서 초안 발표까지 했다면 좀 독단을 부려도 될 텐데…. 이런 표현은 좀 그렇지만 지금 당 안에서 ‘위기감’을 보기 어렵다. 비대위가 아니라 평상시 최고위원회 같은….” (평상시 최고위원회?) “당 대표부터 각 위원이 쭉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던 거. 나름 고민하고 하는 말이겠지만 한가한 내용이 많다. 명색이 비대위고, 더욱이 9명 중에 3명이 30대 청년인데 당에 쓴소리는 별로 없다. 정치적 커리어 쌓기로 여기는 게 아닌지….”

※ 지난 한 달간 비대위 모두발언에서 이들 30대 위원들이 한 말은 피트니스계 불법 약물, 보유세, 조두순, 스토킹방지법, 이건희 리더십 등 일반적인 사안들이다. 발언 내용에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비대위’ 상태라는 걸 생각하면 좀 한가하게 보이는 게 사실이다. 다른 위원들도 마찬가지다. 한 비대위원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대한 섹스 스캔들 발언으로 두 달 활동 정지 처분을 받았다.

―혁신이 어렵다면 현실 대응이라도 잘해야 하는데 여당의 가덕도 신공항 추진을 꼼꼼히 따지기는커녕 앞장서서 특별법을 냈다.

“개별 의원들의 입장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우리가 집권할 때 김해신공항으로 결정한 거다. 그걸 뒤집는다면 정책의 일관성은 어떻게 하나.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의 검증 과정도 온통 의혹투성이다. 그러면 진상조사위를 만들고 상임위를 열어 검증 과정을 짚고, 국정조사를 요구해야 하지 않나. 더 심하면 검찰 수사도 의뢰하고.” (그런 말이 안 나오나?) “안 나온다. 오히려 알다시피 당내 부산 의원들 전원이 예비타당성조사(예타)도 면제해주는 특별법을 여당보다도 먼저 발의했다. 여당 술수에 말린 건데, 이렇게 계속 말리면 내년 보궐선거 끝나고 5번째 비대위가 서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 지난해 정부가 24조 원 규모의 국책사업에 예타를 면제하자 자유한국당은 ‘총선을 겨냥한 매표행위’ ‘역사는 문재인 대통령을 국가 재정을 파탄시킨 주범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주호영 원내대표가 특별법을 발의한 의원들을 강하게 질책했다고는 하지만 법안을 철회시키지도 않고 있다.

“애매하게 저쪽 술수에 말린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가덕도 신공항이 만들어지면 그 열매를 우리가 먹을까? 민주당이 가져가지. 그리고 지금 잘못하고 있는 게… 선거 이슈가 성추행이 아니라 공항 건설로 바뀔 우려도 크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동안의 모든 우리의 잘못을 속죄하는 의미에서 서울 부산 보궐선거에 후보를 안 내는 건 어떨까 싶다.” (미쳤다고 펄쩍 뛸 것 같은데.) “그럴 거다. 그런데 넓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20대 총선 막장 공천, 탄핵, 이후에 벌어진 숱한 망언, 전직 대통령들의 구속 등등 지난 4년간 우리도 많은 잘못을 저질렀지만 공식적으로 사과 한번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워낙 오랫동안 안 하다 보니 이제는 사과하자고 하면 ‘왜 이제 와 뜬금없이?’ ‘문재인은 더 잘못하고 있다’ ‘여당에 공격의 빌미를 준다’고 한다. 우리가 덮으면 뭐 하나? 국민이 기억하는데. 사과도 말로만 하면 무슨 의미가 있나. 국민이 볼 때 정말 참회했다는 각인이 들 정도로 어려운 행동을 해야지. 그동안의 모든 잘못을 반성하고 책임지는 차원에서 과감하게 후보를 내지 않는다면 우리의 진정성을 국민들이 믿어주지 않을까.”

―그 정도 생각을 받아들일 정도라면 이렇게 되지도 않았을 것 같은데….

“그렇긴 한데…. 서울 부산 지면 대선도 없다고 하는데, 보궐선거만 이기면 대선까지 바로 이길 것처럼 여기는 건 아닌 것 같다. 국민들이 보기에 국민의힘이 크게 변했다, 드디어 정신 차렸구나 하는 행동을 해야지. 저쪽은 당헌까지 바꿔 가며 아득바득 시장 자리를 탐하는 정당. 우리는 그동안 저지른 많은 잘못을 반성하는 차원에서 선거 포기라는 쓴 약을 마다하지 않는 정당. 그렇게 크게 반성하고 변해서 2022년 지방선거에서 당당하게 이기는 게 낫지 않을까. 불과 1년 차이인데…. 그리고 솔직히, 달라진 것 없이 반사이익으로 정권을 잡아도 걱정이다.”

―도로 새누리당이 될까 봐 그런가.

“지금 우리 당도 그렇고 보수 지지층에서 문재인 정권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하고 있다. 그런데 스스로 잘해 점수 따서가 아니라 오직 반사이익으로만 집권을 하면, 진상 규명이라는 이름으로 지금 정권의 비리를 파헤칠 거고, 잘못한 건 전부 전임 정부 탓으로 돌릴 거다. 그걸 정당화하기 위해 상대를 더 매도할 거고. 지금 정부가 그렇게 하고 있지 않나.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뒤를 잇는 상황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을 거고…. 그러고 나면 저쪽도 다시 이를 물겠지. 그리고 또 반사이익으로 정권이 바뀌면 10년, 15년 앞으로 내내 복수전이 벌어지지 않을까. 우리가 변해서, 차악이 아니라 최선이라 선택받는다면 극렬 지지층에 끌려다니지도 않을 테고, 굳이 상대를 매도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당했다고 문 대통령도 감방에 넣어야 하나? 그다음은? 현 정권의 폭정이 도를 넘고 있는데 그다음에 들어선 집권세력이 하나도 안 변한 도로 새누리당이라면 너무하지 않나.”



동네 공항 놔준다니 감시는 고사하고 앞장서 예타 면제 특별법을 발의해준 제1야당 의원들. 얼마나 오래하고 싶기에 국민에게 천명한 4선 연임 금지 혁신안도 무산시키나. 혁신은 고사하고 이해관계에는 여당 못지않은 사람들. 쓰레기차 피하려다 똥차 만났는데, 쓰레기차에 다시 치이면 억울해서 어찌 살까. 국민의 짐을 덜어주진 못할망정 근심만 끼치니… 국민의 짐이 너무 무겁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