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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나눠준 당신께[횡설수설/김영식]

입력 | 2020-12-01 03:00:00


미국인 킴벌리 플로레스 오초아 씨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올해 초 한국을 방문했다. 2016년 애리조나에서 자신에게 췌장과 신장을 기증하고 세상을 떠난 고 김유나 양의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스튜어디스를 꿈꾸며 미국 유학 생활을 하던 유나 양은 불의의 교통사고로 뇌사상태에 빠졌다. 기적을 기다려야 할지…. 하루에도 수십 번 고민하던 부모는 장기 기증을 결심했고, 미국인 6명이 장기를 이식받았다.

▷“유나 어머니, 만나주셔서 감사합니다. 유나가 준 생명의 선물 덕에 제가 건강하단 걸 알리려 여기 왔어요. 유나는 항상 제 안에 살아 있습니다.” 어머니는 눈시울을 적시면서도 “유나가 남긴 선물이 얼마나 귀한지 다시 느꼈다”며 큰 위안을 얻었다.

▷국내 장기기증자 가족이 이식자 가족을 만난 건 이때가 처음인데, 앞으로도 한참 동안 이런 모습을 다시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된다. 유나 양은 미국 현지의 장기 기증 절차를 밟았기 때문에 기증자와 수혜자 가족의 정보를 제한한 국내법 제약을 받지 않은 지극히 예외적인 사례다.

▷장기 이식자들에게 기증자는 생명의 은인이다. 새로운 삶을 준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싶고, 어떻게든 감사를 표시하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기증자의 가족들도 이식받은 사람들이 잘 살고 있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기증받은 이들의 “잘 지낸다”는 한마디가 유족들에겐 자그마한 위로가 될 수 있다. 기증자 가족이 금전적 보상을 요구할까 봐 우려해 서로 정보를 알 수 없도록 제한한 국내와 달리 해외에선 시민단체들이 기증자와 수혜자 및 그 가족이 서로 거부하지 않으면 편지 교류에 이은 만남을 주선한다.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가 6월부터 4개월간 장기기증 수혜자나 가족들이 기증자 유족에게 편지를 쓰는 ‘나의 영웅, 고맙습니다’ 캠페인을 벌였다. “밝은 세상을 볼 수 있게 됐어요” “제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어요”라는 편지들이 도착했다. 소중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수혜자들은 자신이 누린 기적이 기증자의 안타까운 죽음과 맞물린 일임을 잘 알기에 마냥 기뻐하지 못하는 죄송함을 함께 담았다. 달리 감사를 표현할 길이 없어 자신도 장기 기증을 서약했다는 편지도 있었다.

▷‘장기 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 시행된 2000년 이후 뇌사자 약 6000명이 장기 기증을 했고, 2만여 명이 새로운 삶을 얻었다. 사는 동안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기도 힘든데, 이들은 떠나면서도 수많은 생명을 살린 것이다. 유가족을 예우하고 떠난 이를 잊지 않게 해주는 그런 따뜻한 소식이 장기 기증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고마운 영웅들을 이어주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김영식 논설위원 spe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