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이후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죠. 오랜 기간 브로드웨이가 문을 닫은 건 사상 처음일 겁니다.” (최윤하 PD)
토니상 주최 기관이자 공연제작자·극장주 협회인 ‘브로드웨이 리그(The Broadway League·BL)’의 국제위원회원들은 11월 10일(현지시간) ‘코로나19 현황과 대응 방안’을 주제로 열린 화상회의를 열었다. 3월부터 모든 공연장 간판을 내린 뒤 최소 내년 5월30일까지 문을 닫는다는 성명을 발표한 뒤 사안의 중대성을 고려한 긴급회의였다. 코로나19가 BL 회의 안건이 된 것도 이때가 처음이다.
국내 유일의 BL 회원사인 CJ ENM의 뉴욕 주재원으로 회의에 참가한 최윤하 PD는 “공연계는 ‘쇼는 계속돼야 한다’는 정신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 중”이라고 전했다.
BL 회의에서 ‘셧다운’ 없이 유일하게 공연을 지속하는 한국은 부러움의 대상이자 롤모델이었다. 현지 인기작 위주로 진행하던 회의 판도가 달라진 것. 최 PD는 “늘 새로움을 찾는 브로드웨이는 방탄소년단, 영화 ‘기생충’의 활약에 이어 애틀랜타서 열린 국산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에도 좋은 반응을 보였다. 한국 콘텐츠의 입소문이 퍼지고 있었다”고 전했다.
특히 방역에 선방하며 공연을 지속하는 비결이 활발히 논의됐다. 해외 참가자들은 IT 기술, 마스크 착용, 정부의 빠른 초기 대응 등을 요인으로 들며 한국의 모범사례를 이미 분석해놓은 상태였다. 최 PD는 “패널들은 한국에서라도 이어지는 공연을 지켜보며 대리만족하고 있다. 나는 위기에 똘똘 뭉치는 스태프들의 협동심도 ‘선방 비결’로 꼽았다”고 했다.
안타깝게도 해외 공연계는 여전히 동력을 얻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일본은 극장 셧다운 이후 5000명 미만 공연장에서 좌석 거리두기 해제를 실험 중이다.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예술활동 소비를 장려하는 정부 의도가 반영됐다. 팬데믹 피해가 큰 멕시코 및 중남미의 경우 상황은 더 암담하다. 멕시코 최대 공연 제작사 오세사(Ocesa)의 줄리에타 곤잘레스 대표이사는 “뮤지컬 ‘알라딘’은 1년 연기됐으며 직원의 45%는 무급 휴직 상태다. 팬데믹 확산세를 잡기 어렵다. 정부보다 개별 제작사나 개인의 방역 노력에 의지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유럽 최대 공연 제작사인 스테이지 엔터테인먼트는 국가별 대응 정책을 소개했다. 팬데믹을 비교적 선방한 독일은 작품 내용에 ‘코로나 프로토콜’을 반영할 예정이다. 배우 간 키스 장면과 깨무는 장면이 금지된다. 뱀파이어 소재의 ‘Dance of Vampire’를 준비하는 제작진은 장면 수정을 고민하고 있다. 무대 뒤에서도 제작 인원을 최소화하고 거리두기를 실천하는 ‘코로나 버전’을 준비한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