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 장관 김현미가 또 국민적 염장을 질렀다. “아파트가 빵이라면 제가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겠다”며 지금 아파트 물량이 부족한 건 5년 전에 아파트 인허가 물량과 공공택지가 대폭 줄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흥. 밤 새워 빵을 만들기는커녕 냅다 빵 반죽 뒤엎은 뺑덕어미 같은 장관이 또 과거정부 탓이다. 좌파정부의 우파 핑계가 한두 번도 아니지만 이번엔 못 참겠다. 적어도 팩트를 왜곡하진 말아야 할 게 아닌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동아일보 DB
● 아파트 못 짓게 한 건 문 정권이다
5년 전인 2015년 주택건설 인허가는 76만5300호다. 2014년 51만5200호에서 25만 채가 늘었다. 심지어 국토부는 ‘2015년 신규 주택시장 호조세로 역대 최대치 인허가’라고 통계 설명을 붙여놨다. 2016년에도 72만 호를 넘었던 인허가 물량은 문재인 정부 들어 2017년 65만 호, 2018년 55만 호, 2019년 49만 호로 크게 줄었다. 그걸 막은 게 문재인 정부였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도 뉴타운 개발을 속속 취소시켰는데 심지어 김현미는 2018년 박원순이 ‘리콴유 세계 도시상’을 수상하며 여의도 글로벌금융 중심지 개발 계획을 밝히자 극구 반대해 주저앉혔다. 분양가상한제·재건축초과이익환수제·안전진단 강화 등 오만 규제로 구축 아파트의 신축을 막아놓고 태연히 우파정부 때문이라는 건 비열한 거짓말이다.
진중권 페이스북 캡쳐
● 민간기업이라면 진작 잘렸을 것
김현미가 “아파트가 빵이라면…”이라고 말할 적엔, 밤새워 빵 만들어 국민을 먹여 살리는 어머니 같은 모습을 혼자 떠올렸을지 모른다. 재기발랄한 진중권이 ‘헨젤과 그레텔’ 속의 과자로 만든 집 삽화를 소개했듯, 국민이 연상하는 김현미는 마귀할멈 아니면 잘해야 마리 빵투아네트다. 민간기업이 열심히 빵 만들고 있는데 자기가 개입해 못 만들게 해놓고는 자기들은 살지도 않을 호텔방 월세를 국민더러 살라는 건 완전 뺑덕어미다. 민간기업 같으면 자기 분야에서 3년 이상 실패한 간부는 진작 경질됐다. 김현미는 2015년 문재인 당 대표 비서실장을 하며 정무적 감각을 인정받았다는 이유로 스물네 번이나 부동산정책을 실패하고도 고개를 빳빳이 쳐드는 실세 장관이다. 자신을 자르는 순간 문 대통령이 민생경제 실패를 인정하는 게 되므로 못 자른다는 걸 빤히 아는 것이다.
서울 아파트 전경. 동아일보 DB
● 아파트 전세는 줄고, 값은 뛸 수밖에
3년 전부터 아파트 건설 인허가를 대폭 줄인 대가는 2022년, 2023년 아파트값 상승으로, 전세 폭등으로 돌아올 것이다. 그래도 국토부 장관이라고 천기를 누설했는데, 아파트 인허가가 줄면 5년 후 공급이 줄어 값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 당연히 전세도 따라서 뛴다. 1990년대 전셋값이 잡혔던 건 주택 200만 호 건설정책이 있어서였다. 벌써 월세대란 조짐이 심상찮다. 이 정부가 강행한 임대차2법이 폐지되지 않는 한, 내년 봄엔 전세의 씨가 마를 수도 있다. 둘째는 이 정부가 코로나19에 대응한다며 대폭 늘린 통화량 때문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통화량이 1% 증가할 때 주택가격은 1년에 걸쳐 0.9% 상승한다. 문 정권은 이미 네 차례 추경예산을 편성했고 민생금융안정 패키지로 82조 원의 유동성을 공급했다. 김현미가 전세난 배경에 대해 “근본적인 원인은 코로나를 겪으면서 기준금리가 0.5% 떨어진 것”이라고 구시렁댄 것은 ‘그게 왜 내 탓이냐, 통화량이 늘었기 때문이지’라는 속뜻이었던 거다.
셋째, 현 정부 들어 외국인 특히 중국인의 부동산 구입이 무슨 이유에선지 크게 늘었다. 2017년부터 올 5월까지 외국인이 취득한 아파트가 2만3167건인데 이 중 중국인이 1만3573건으로 60%에 가깝다. 이들이 사놓은 집을 우리처럼 전세로 착착 내놓을 리 없다. 또 중국인 아니어도 아파트 증여가 늘었다. 한 푼이 아쉽지 않은 이들은 전세 관련 규제가 까다로우면 그냥 비워둘 공산이 크다.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미래주거추진단장(왼쪽)이 지난달 24일 서울 구로구의 공공임대주택을 둘러보고 있다. 동아일보 DB
● 내년 봄 나아진다는 희망고문 집어치우라
김현미가 침이 마르게 자랑한 호텔 리모델링 월세방은 깨끗한 모텔방 딱 그 수준이다. 20, 30대 독신가구에는 ‘힘이 되는 주택’일 수 있어도 더 이상은 아닌 것이다. 운동권 출신 장관 김현미가 아니라 서른한 살, 스물일곱 살의 두 아들을 둔 어머니로서 생각해보라. 아들이 결혼할 때, 밥도 해먹을 수 없는 그런 곳에서 신혼살림 시키고 싶겠나. 경제를 모르면 경제 전문가의 고언을 듣기 바란다. 국토부에도 부동산을 아는 유능한 공무원이 수두룩하다. 단지 말을 못 할 뿐이다. 정무감각, 아니 양심이 손톱만큼이라도 남아 있다면 대통령에게 “부동산정책 때문에 민심 이반이 심상치 않다”고 직언해야 한다(총애받는 김현미조차 대면보고한 지 몇 달 된다고 한 게 불길하긴 하다). 그것도 못 한다면, 가만히 있으라. 내년 봄쯤 나아진다는 거짓말 따윈 하지 말란 말이다.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