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유명인 논문 표절 논란
“당시에는 관례로 여겨졌던 것들인데….”
논문 표절 논란에 휩싸인 유명인들의 ‘단골 멘트’다. 자신이 학위 논문을 심사 받던 과거에는 무리 없이 통과가 되었는데, 이제 와서 문제 삼는 게 부당하다는 것이다. 별도의 출처 표기 없이 타인의 저작물을 사용하는 표절과 관련해 자신의 논문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주장이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섰던 가수 홍진영 씨의 해명도 비슷했다. 지난달 초 한 언론사가 그의 2009년 조선대 무역학과 석사 논문 ‘한류를 통한 문화콘텐츠 산업 동향에 관한 연구’를 논문 표절 검증 사이트인 ‘카피킬러’를 통해 분석한 결과 표절률은 74%. 홍 씨는 “당시 문제없이 통과되었던 부분들이 지금에 와서 단지 몇 %라는 수치로 판가름되니 답답하고 속상하다”고 밝혔다.
○ 매번 흐지부지되는 논문 표절 논란
정부가 2007년 제정한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에서 말하는 표절의 정의다. 타인의 연구 내용을 그대로 활용하든, 문장이나 단어를 조금씩 변형하든, 외국어로 된 것을 번역해서 쓰든 ‘출처 표시’가 없다면 표절이라는 뜻이다.
그간 유명인들이 과거 논문으로 도마에 오른 적은 많았다. 고위 공무원의 인사청문회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저격 소재’도 학위 논문이다. 최근 임명된 서욱 국방부 장관은 인사 청문회에서 2015년 경남대 박사학위 논문 표절률이 32%로 밝혀져 비판을 받았다. 논문 표절이 직접적인 이유가 돼 낙마한 이들도 있다. 김병준 국민대 명예교수는 2006년 교육부 장관 취임 13일 만에 표절 논란으로 자진 사퇴했고, 김명수 전 한국교원대 교수도 2014년 교육부 장관에 지명됐다가 제자 논문 표절 의혹으로 지명이 철회됐다.
숱한 논란이 있었지만 실제로 표절이 인정돼 학위가 취소된 사례는 많지 않다. 앞서 2013년 표절 의혹을 받았던 방송인 A 씨의 논문에 대해 진상조사를 했던 대학 측은 “일부에서 표절 행위가 확인됐지만 전체적 관점에서 표절 논문은 아니다”라고 판단했다. 논문의 가설이나 연구모형 자체를 베낀 것이 아니라면 경미한 표절로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시각에 반론을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지방 사립대학 교수 조모 씨는 “선행연구를 정리하는 부분도 연구자 고유의 관점과 분석력이 담긴 지적 산물”이라며 “연구모형이나 결론 같은 논문의 핵심 파트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 수준이 심각하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 대학마다 제각각인 표절 관리
유명인들의 논문 표절 논란이 크게 일었던 2013년을 기점으로 대학의 부실한 학위 논문 심사 방식을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들끓었다. 이에 교육부는 각 대학에 대학 자체적으로 연구윤리 규정을 마련하라는 내용을 담은 ‘대학연구윤리 강화를 위한 협조요청’을 보냈다. 이후 논문 표절 의혹을 받는 이들이 “심사 당시에는 아무 문제가 없었다”고 해명할 때의 분기점도 대개 이 즈음이다.
하지만 이런 가이드라인은 말 그대로 권고사항일 뿐이라 대학마다 편차가 크다. 본보가 서울의 주요 사립대를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표절 여부를 1차적으로 판별할 수 있는 논문 유사도 검증 시스템 분석 결과 제출에 대한 규정이 학교마다 달랐다. 연세대와 성균관대 등은 “학위 논문을 심사받는 학생들이 분석결과를 제출할 의무는 없다”고 밝혔다.
표절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도 제각각이다. 한국외국어대의 경우 논문 유사도 검증 시스템 분석 결과를 단과대 구분 없이 의무적으로 제출해야 하며, 해당 시스템에서 유사도가 19%를 넘으면 안 된다는 기준이 있다. 논문 주제에 따라서는 인용구가 많아 유사도가 자동으로 높아지기도 하는데, 지도교수가 사유서를 작성해 이를 입증해야 한다. 반면 검증 결과 제출은 의무로 해놓고 유사도 기준은 정하지 않은 학교도 많다.
대학이 각기 다른 윤리규정에 따라 자체적인 판단을 내리기 때문에 같은 논문을 두고도 전혀 다른 처분이 내려질 가능성도 있다. 가령 홍 씨 논문에 대해서도 여러 입장이 나온다. 지방의 한 사립대 교수는 “지금까지 드러난 점을 감안하면 신속하게 조사를 진행하고 학위를 취소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반면 서울의 한 공과대학 교수는 “10년이 지난 논문이기 때문에 도의적 비난만 할 수 있을 뿐 취소는 불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혼선이 이어지고 있지만 교육당국은 대학마다 사정이 다르고, 전공에 따른 특수성도 있기 때문에 일괄적인 의무를 부여하는 게 어렵다는 입장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교육부가 세세한 내용까지 정해주면 학문의 자유를 침범한다는 비판이 따를 수 있다”며 “학위 논문 심사 관리 기준은 대학이 자체적으로 수립, 운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학위논문에 관한 잡음이 끊이지 않는 상황에서 교육당국이 최소한 지금보다는 명확한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배영찬 한양대 화학공학과 교수는 “학교마다 규정이 다르면 같은 사안을 두고도 자의적인 판단이 일어날 수 있다”며 “완전히 똑같은 잣대를 강요할 순 없더라도 어느 정도 공통된 기준을 마련할 필요는 있다”고 밝혔다.
○ 표절은 언제나 틀리다
논란의 당사자들은 “옛날엔 그게 관행이었다”는 식으로 자신을 변호하곤 한다.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나 표현을 무단으로 사용하는 표절이 관행이던 시대가 있었을까. 표절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을 때 유야무야 넘어간 논문들이 있었겠지만, 표절 그 자체가 정당화되긴 어렵다.
이인재 대학연구윤리협의회 사무총장(서울교대 윤리교육과 교수)은 “‘인용법을 잘 몰랐다’ ‘주석을 다는 것에 소홀했다’는 변명을 단순한 실수로 치부하고 넘어가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만일 정직하게 출처 표기를 했다면 논문 심사 과정에서 “자신의 연구결과에 비해 인용문 비중이 과하다”는 지적을 받고 수정하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다. 출처 표기를 생략함으로써 ‘마치 내 것인 듯’ 보이게 하는 건 실수가 아니라 거짓말이라는 것이다.
표절을 잡아내기 위한 장치로 카피킬러나 턴잇인 같은 기술이 활용되고 있지만, 표절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게 더 중요하다. 아직까지는 기술적 한계가 있어 원문의 일부를 변형해 자기 말로 풀어 쓰는 ‘패러프레이징(paraphrasing)’까지 잡아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 한국연구재단이 발표한 ‘2018년도 대학 연구윤리 실태조사’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연구 부정행위는 332건 적발됐다. 유형별로 살펴보면 논문 표절이 36.7%(122건)로 가장 높다. 전체 332건 연구 부정행위 중 정직과 해임, 파면 등 중징계 처분이 내려진 건 12.6%뿐. 올해 실시된 ‘2020년 대학교원의 연구윤리 인식수준 조사’에서는 연구윤리 검증 과정이 공정하게 처리되지 못하는 이유로 연구자 간 온정주의(28.6%), 연구 부정행위 판단 기준 부족(26.9%) 등이 꼽혔다. 연구윤리에 관한 대학의 자정 노력이 필요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실용적 목적의 특수대학원이나 전문대학원에서 학위를 수여할 때 논문 대신 다른 기준들을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원용 연세대 화학과 교수는 “학문이 본업이 아닌 직장인들에게 일반대학원처럼 학위논문 제출을 졸업요건으로 적용하는 건 무리일 수 있다”며 “졸업시험, 사례연구, 학점 추가 이수 등으로 대체한다면 불필요한 논문 표절 논란도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수연 sykim@donga.com·이소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