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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혁신학교’ 지정 논란[현장에서/김수연]

입력 | 2020-12-03 03:00:00


2일 서울 서초구 경원중 앞에서 한 학부모가 ‘마을결합 혁신학교’ 지정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경원중 학부모 제공

김수연 정책사회부 기자

“학생이랑 학부모가 싫다는데 갑자기 ‘혁신학교’라니요?”

서울 서초구 경원중이 내년 3월 ‘마을결합 혁신학교’로 전환된다는 소식에 학부모들이 추운 길거리에서 반대 서명을 받기 시작했다. 학교 측은 올 9월 서울시교육청에 마을결합 혁신학교 전환 신청을 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탓에 설명회 없이 가정통신문이나 서면 동의 등의 과정만 거쳤다. 전환이 확정되자 서울시교육청 시민청원 게시판에 ‘경원중의 혁신학교 지정을 반대한다’는 글이 수십 건 올라왔다. 2일 현재 동의자가 1만 명을 넘었다. 교육청의 혁신학교 담당 부서에도 항의 전화가 이어지고 있다.

비슷한 일은 또 있다. 서울 강동구 강동고도 내년 3월 마을결합 혁신학교로 바꾸려다가 학부모와 주민들의 항의에 계획을 접기로 했다. 학교 측은 “뜻하지 않은 오해와 거부감 등으로 인한 지역주민의 심각한 반대 의견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2009년 도입된 혁신학교는 진보 성향 교육감들의 역점사업이다. 획일적인 교육과정을 벗어나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학습능력을 키우는 데에 방점을 둔 모델이다. 이처럼 취지가 좋은데도 일반학교가 혁신학교로 전환하려 할 때마다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학부모도 많다. 일단 학력 저하에 대한 걱정이 크다. 초등학교보다는 중고교 등으로 학교급이 올라갈수록 이런 우려가 더 커진다. 일부 지역에선 혁신학교 배정 여부에 따라 아파트 단지 선호도가 갈릴 정도다.

혁신학교 확대를 둘러싼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2018년 서울시교육청은 서울 송파구 해누리초중을 교육감 직권으로 혁신학교로 지정하려다가 주민들의 반발에 부딪쳤다. 이를 계기로 ‘직권 지정’ 규정을 없애는 대신에 ‘신설·재개교 학교는 1년간 예비혁신학교로 지정한다’는 원칙을 만들었다. 2019년엔 서울 강서구 마곡지구 내 신설 중학교의 ‘예비혁신학교’ 지정을 반대하는 주민들이 교육청 앞에서 시위를 벌였다.

갈등이 반복되는 이유는 혁신학교 사업이 학부모들의 충분한 공감대를 이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생과 학부모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지정 절차도 문제다. 일반학교를 혁신학교로 전환하려면 ‘설명회→학부모 동의율 조사→학교운영위원회→신청’ 절차를 밟아야 한다. 그런데 학부모와 교사 중 어느 한쪽에서만 동의율이 50%를 넘으면 학교운영위원회 안건으로 회부될 수 있어 한계가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현재 혁신학교 226개교를 운영 중이며, 내년에는 마을결합 혁신학교 15곳을 더 늘릴 계획이다. 혁신학교 확대는 현 정부의 국정과제이기도 하다. 하지만 교육 수요자의 불만과 불신을 먼저 해결하지 못하면 질적 성장은커녕 양적 확대마저 이루지 못할 수 있다.

 
김수연 정책사회부 기자 sy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