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8월 7일 서울 여의도공원에서 수도권 대형병원 전공의들이 집회를 열고 있다. 동아일보DB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얼마 전 만난 국내 한 대학병원 원장의 하소연이다. 의사 2700명이 부족한 상황이 현실로 다가오고 있어서다. 그의 걱정대로 의대생들의 의사 국가시험 미응시로 인한 의료진 공백의 여파는 당장 내년 초부터 시작돼 5년 이상 지속될 수 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하려고 나서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자 의사면허 없는 의대 졸업생 모두를 환자 진료 업무에 조기에 투입한 이탈리아와 대조적이다. 이탈리아는 의사 면허시험을 아예 면제해주고 이전보다 8, 9개월 일찍 진료 업무를 시작해 코로나19에 대응하고 있다.
의료계 파업이 끝난 지 2개월이 넘었다. 의대생들이 당시 목소리를 높였다고 정부와 정치권에서 이렇게까지 철저히 외면하는 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쩌면 의대생들은 희생양이나 다름없다. 선배들과 같이 거리로 나가 함께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 그런데 선배들은 사라지고, 정치권은 유독 의대생에게만 사과를 요구하는 모양새다.
결국 상황이 진전되지 않는다면 내년에 이들이 없어도 모든 병원의 업무가 잘 돌아갈 수 있을까? 환자들에겐 아무런 피해가 없을까? 벌써 현장에선 2700명 부족으로 인한 부작용과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서울의 한 대형 병원은 보통 내과 지원 경쟁률이 평균 3 대 1이었지만 지금은 불가능한 수치라며 걱정하고 있다. 내과 외과 산부인과 소아과 등 필수과에 해당되는 전문의 지원이 전무한 데다 내년엔 더욱 심각해진다는 이야기다. 비보험 위주로 진료하는 분야와 피부과 성형외과 영상의학과 쪽으로 더욱 몰릴 기세다.
지방 병원에선 아예 인턴 뽑는 것을 포기할 정도다. 지원자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여파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의사면허를 취득하고 바로 보건의료 취약 지역으로 가는 500여 명의 공중보건 의사의 수급도 문제다. 특히 2026년에 배출될 전문의 수 부족으로 군의관과 공중보건의 수도 부족하게 돼 군의료, 지방의료원, 의료취약지 의료기관에서 의료서비스 제공이 어려워질 것으로 예상된다.
병원 내 필수과 전공의 사이에선 ‘이 기회에 그만두겠다’는 말이 종종 나온다고 한다. 내년에 후배 의사가 들어오지 않으면 일이 두 배로 늘어나서다. 반대로 다시 전공의를 시작하면 인기 진료과에 경쟁 없이 갈 수 있다는 셈법도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지금은 코로나19 3차 유행 속에서 의사 한 명이 아쉬운 상황이다. 올해 3월 대구에 코로나19 환자가 폭증했을 때도 의사가 부족해 환자를 전북대병원 등으로 옮겼다. 그런 가운데 무려 2700명의 의사가 부족해지는 상황이 예정된 것이다.
지금이라도 국회 보건복지위원회를 비롯해 관련 정치인들이 상황의 심각성에 공감해야 한다. 그리고 2700명을 구제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이탈리아처럼 하지 못해도 서브 인턴제를 마련해 병원에서 의사 일을 하도록 하거나 면허가 없더라도 진료할 수 있는 진료의사제를 만들어 의사가 부족한 현장에 투입될 수 있도록 해야 된다. 전례도 있다.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때도 국시 일정을 1월에서 2월로 한 달가량 미루고 추가로 응시 기회를 제공했다.
이진한 의학전문기자·의사 liked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