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 속 동아일보]<18>김병종 서울대 명예교수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사를 찾은 김병종 서울대 명예교수가 198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등단 기사를 들어 보였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동아일보사에서 만난 김병종 서울대 명예교수(67)는 “그림과 글로 창작 욕망을 분출했던 제 개성을 일찍부터 알아준 곳이 동아일보”라고 했다.
“어릴 적부터 글과 그림은 저에게 밥과 반찬처럼 어우러졌습니다. 신춘문예를 시작으로 동아일보의 기획 시리즈 ‘새로 쓰는 선비론’의 삽화도 그리고, 객원논설위원으로 글을 쓰기도 했지요.”
그해 김 교수는 중앙일보 희곡 신춘문예에도 당선됐고 전국대학생미전에서 대통령상을 받았다. 이 덕분에 그를 인터뷰하러 온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와 동아일보 옛 사옥(현재 일민미술관)을 찾았던 기억도 생생하다고 했다.
“일민 김상만 회장을 복도에서 뵙고 인사를 드렸는데, 단아하고 인자한 모습이 기억납니다.”
소설가 최명희(1947∼1998)가 그와 같은 해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함께 등단해 김 교수는 최명희의 작품에 서평을 써주며 오랜 인연을 맺었다. 김 교수는 고교 2학년 때 여성동아에 ‘에디트 피아프’에 관한 글을 기고했다. 문화계에서는 ‘여성동아’의 영향력이 특히 컸다고 말했다.
“박수근 화백이 등장하는 박완서 선생의 '나목'은 1970년 여성동아 장편 공모 당선작이지요. 1972년 여성동아 공모에 당선된 정혜연의 장편소설 ‘배회하는 바위들’에는 주인공의 남편이 동아일보 입사시험에 줄줄이 낙방해 동아일보 앞을 지나가면 침을 ‘퉤’ 뱉었다는 문장도 등장합니다(웃음).”
“문화와 예술론, 사람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우리 삶을 훈훈하고 윤기 있게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고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셨죠.”
그의 지론은 2018년 서울대 정년퇴임 연설에도 반영됐다. 미대 교수로는 서울대 역사상 처음으로 대표 연설을 한 그는 “훌륭한 농부가 되기 위해 화려함에 현혹되지 않고 눈앞의 작은 것부터 실천하고 행복을 찾아야 한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여전히 모든 글을 직접 손으로 쓴다는 그는 ‘글로 된 매체’의 힘은 축소되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저는 수십 년간 종이를 다룬 미술가입니다. 아무리 인터넷 문화가 가속되어도 신문을 넘겨 읽고 행간의 의미를 되새기는 맛 때문에 신문은 죽지 않을 겁니다. 프랑스의 르몽드, 일본의 아사히신문 등 선진국 매체도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신문의 건재함은 그 나라의 독서층, 혹은 지식인층의 깊이를 보여주는 것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