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나라의 장관들이 국민의 자랑은 고사하고 창피함의 대상이 된다면 말이 될까. 2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회의 내내 인사말도 못 하고 발언권을 박탈당하는 초유의 수모를 겪었다. 성추행 피해자를 돌봐야 할 여가부 수장이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놓고 “국민이 성인지 감수성을 집단학습할 수 있는 기회”라고 해 상임위가 파행됐는데, 여야가 장관이 말하지 않는 조건으로 개최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날 회의는 법안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도, 장관의 설명도 없이 진행됐다.
▷같은 날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서울 중저가 지역으로 매수 심리 진정세가 주춤한 양상’이란 말도 비웃음을 샀다. 시장이 진정되고 있다는 뜻인지, 다시 끓어오른다는 건지 언뜻 이해하기 힘든 화법이기 때문이다. 집값은 잡고 싶은데 통계는 반대이다 보니 오죽하면 그런 말이 튀어나왔겠냐는 동정론까지 나왔다. 명색이 법무부 수장인데 법도 절차도 아랑곳없는 추미애 장관, 언제는 공급이 충분하다더니 이제는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새도록 찍어내고 싶다”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한국공인중개사협회가 지난달 ‘부동산 산업의 날’ 장관 표창을 안 받겠다고 했을까.
▷‘장관 발언 금지’는 사실 망신 주기에 가깝고, 국회의 품격도 떨어뜨리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는 대통령 눈치만 보며 현실을 견강부회(牽强附會)하고, 군색한 변명만 늘어놓은 장관들 스스로가 초래한 면이 크다. 입을 열 때마다 ‘오늘은 또 무슨 사고를 칠까’ 걱정이 되고, 듣고 나면 딴 나라에 알려질까 창피하니 왜 부끄러움은 늘 국민의 몫인가.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