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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고, 직종 따라 소득 등 천차만별… ‘고용보험 선택권’ 고려해야[인사이드&인사이트]

입력 | 2020-12-04 03:00:00

고용보험 가입 의무화 법안 논란




허동준 산업1부 기자

최근 늘고 있는 배달 라이더는 배달의민족과 같은 플랫폼 기업과 계약을 맺고 일한 만큼 수수료를 받는다. 택배기사도 CJ대한통운이나 로젠택배와 같은 특정 기업 직원처럼 보이지만 이들은 모두 개인사업자다.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도 그렇다. 이들을 특수형태근로종사자 또는 특수고용노동자(특고)라고 한다.

최근 이들의 고용보험 의무 가입을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이들은 개인사업자이기 때문에 갑자기 소득이 줄거나 계약이 깨져도 실업급여를 받지 못한다. 이들이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정부 여당은 특고가 무조건 고용보험을 가입하도록 하는 고용보험법과 고용산재보험료징수법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기도 이 법안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건 5월. 5월 10일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문 대통령이 “모든 취업자가 고용보험 혜택을 받는 ‘전 국민 고용보험 시대’의 기초를 놓겠다”며 “특수고용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프리랜서, 예술인 등 고용보험 사각지대를 빠르게 해소해 나가겠다”고 밝히면서다.

문 대통령 연설 이후 상황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우선 예술인이 고용보험 혜택을 받도록 고용보험법 개정안이 다음 날(11일) 곧바로 국회 상임위원회를, 열흘이 채 되지 않은 20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그다음은 특고다. 7월 고용노동부는 특고의 고용보험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개정안은 현재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 국회에 계류 중이다. 지난달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번 정기국회에서 반드시 처리하겠다며 ‘미래입법과제’ 법안 15개에 이를 포함시킨 만큼 법안 통과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하지만 재계는 특고가 일반 근로자와 특성이 다른 만큼 고용보험을 일괄적으로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반대하고 있어 논란이 커지고 있다. 모든 특고에게 고용보험을 적용하고 사업주가 보험료를 공동 부담하면 결국 경영이 어려워지고 고용을 줄이는 악순환이 이어진다는 것이다.

○ 특고는 누구…“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


특고는 법률적으로 사업에 필요한 노무를 제공하고 업무성과에 따라 보수를 받는 일종의 개인사업자를 의미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시행령상 산재보험이 적용되는 보험설계사 등 14개 직종으로 볼 수 있다. 근로자가 회사와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근무 장소와 근로시간, 보수 지급 등을 주요 계약 내용으로 한다면, 특고는 업무량과 업무구역 등을 위탁자와 상호 협의해서 정하고 있다. 일반 근로자가 사용자와 ‘수직적’ 관계라면 특고는 상대적으로 ‘수평적’ 위임 관계에 가까운 개념이다.

하지만 최근 택배기사 과로사 등 특고의 취약한 업무 환경과 사회 안전망 등이 논란이 되면서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주요 과제로 떠올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는 이들이 안전망 사각지대에 있음을 보여줬다. 주로 대면 활동이 많은 학습지 교사, 대리운전기사 등은 일거리가 대폭 줄었지만 일반 근로자와 달리 고용보험 혜택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 고용부가 올해 6, 7월 ‘코로나19 긴급고용안정지원금’ 1차 신청을 한 영세자영업자, 특고, 무급휴직자를 분석해 봤더니 특고 및 프리랜서의 3, 4월 월평균 소득이 코로나19 이전보다 69.1%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규직 일자리는 줄고, 배달 플랫폼과 같은 플랫폼 노동자는 늘 수밖에 없는 현실도 특고 보호 논란에 불을 지폈다. 자발적으로 특고가 됐다기보다 생계 때문에 내몰리는 사례가 적지 않은데, 장기적으로 우리 사회 안전망이 이들을 소득 급락 등으로부터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진 것이다. 문 대통령이 취임 3주년 특별연설에서 “남은 임기 동안 국민과 함께 국난 극복에 매진하면서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며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를 강조해 더욱 특고의 고용보험 개정안이 주목을 받았다.

○ “고용보험 예외 없어야” vs “획일적 적용은 문제”


재계도 특고 등 취약계층을 위한 사회 안전망 확대에 대해서는 찬성하고 있다. 다만 ‘무조건 가입’은 문제가 있다며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정부의 특고 고용보험 개정안은 특고가 고용보험을 예외 없이 가입하도록 한 것이 주요 내용이다. 당사자의 선택권 없이 무조건 고용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사업주와 특고의 보험료 분담 비율은 대통령령으로 정하게 돼 있다. 재계는 현행 고용보험법상 사용자와 근로자가 절반씩 고용보험료를 분담하듯 특고의 고용보험료도 사용자가 절반을 분담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재계는 특고의 직종, 종사 기간, 소득 수준이 다양한 만큼 고용보험도 획일적인 가입이 아니라 각자 특성을 반영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특고의 고용보험 가입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면 당사자 의견을 고려해 ‘적용 제외’ 신청권도 필요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용부 고시에 따르면 직종에 따라 기간과 소득의 편차가 큰 경우가 있다. 보험설계사의 경우 50만 원 이하부터 500만 원 초과까지 소득 격차가 크다. 재계 관계자는 “특고 내에서도 단기간만 짧게 일하고 싶은 사람부터 풀타임으로 생계를 책임지는 사람까지 다양하다. 이들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고 무조건 고용보험을 가입하라고 하면 특고도 기업도 비용 부담만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근 한국경영자총협회와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14개 단체는 국회에 제출한 건의문에 “특고 고용보험제도가 있는 다른 나라들도 특고는 비임금근로자로 구분해 자영업자처럼 임의가입, 보험료 전액 자기 부담 형태로 운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는 의견을 담았다.

독일의 경우 근로자는 고용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지만 자영업자는 본인이 원할 경우 가입하고 보험료를 전액 부담하도록 돼 있다. 미국과 일본은 근로자만 고용보험에 가입한다.

○ 사업주 부담…“일자리 감소 우려”


특고가 자발적인 이직을 해도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도록 한 점은 ‘도덕적 해이’가 우려된다는 우려도 나온다. 특고 대부분이 더 나은 계약조건을 찾아 이직하는 사례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특고의 이직률은 38.1%로 일반 근로자(4.4%)보다 약 8.7배 많다.

14개 단체 건의문에 따르면 기준 보수가 월 245만4540원인 골프장 캐디가 1년 동안 고용보험료를 납부한 다음 소득 감소를 이유로 자발적 퇴사를 하면 736만3620원의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다. 이처럼 12개월 동안 보험료를 납부하고 퇴직을 한 다음 실업급여를 받고, 또다시 일자리를 구하는 등 반복적으로 실업급여를 받는 편법도 가능하다.

재계 관계자는 “근무 일정과 장소 등 출퇴근 관리가 어렵고 주 거래처 변경이 빈번한 특고의 보험료를 산정하기 위한 사업주의 행정비용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재정지출이 대폭 증가할 수 있다며 특고와 일반 근로자의 보험재정을 통합해서 운영하면 전반적인 실업급여 재정 수지 적자로 이어질 수 있다고 문제를 제기하기도 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특고와 일반 근로자의 고용보험 재정을 분리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올해 9월 고용부 비용추계서에 따르면 현재 산재보험법의 적용을 받는 14개 특고 직종에 고용보험이 의무 적용되면 실업급여의 재정수지는 2023년부터 감소해 2025년 176억 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특히 특고가 보험금을 수급하기 시작하는 2022년부터 지출이 대폭 증가될 것으로 보인다.

더군다나 최저임금이 급격히 인상되면서 고용보험 실업급여계정 재정이 악화되자 정부는 지난해부터 보험료율을 기존 1.3%에서 1.6%로 0.3%포인트 높인 상황이다. 실업급여의 하한선은 최저임금과 함께 움직인다. 국회 예산정책처 추계 결과에 따르면 올해부터 2028년까지 근로자 1인당 매년 평균 7만1000원, 기업 한 곳당 41만3000원의 비용이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재정 문제는 물론이고 기존에 고용보험료를 납부해 온 일반 근로자들의 반발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이상호 한국경제연구원 고용정책팀장은 “특고 실업 안전망 구축이라는 법안 취지는 좋지만 무조건 고용보험에 가입해야 한다는 점 등은 개정이 필요하다”며 “특고는 이직이 활발한데 실업급여가 고용보험기금에서 지급될 경우 관련 재정이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재계는 정부안이 통과되면 사업주의 보험료 부담으로 인건비가 늘면서 결국엔 일자리 감소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보험업계를 예로 들면 보험설계사는 이미 저금리·저성장으로 수익성이 악화된 상황에서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인원 자체도 감축될 위기에 처해 있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이 같은 상황에서 고용보험까지 의무 적용될 경우 보험사와 대리점에는 약 893억 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된다. 7035명의 인력이 줄어들 가능성도 크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달 보험사 및 대리점, 학습지 회사, 택배 대리점, 대리운전업체, 골프장 등 특고 관련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4.2%가 저성과 특고에 대한 계약 해지가 이뤄질 수 있다고 답했다. 72.8%는 고용보험 적용이 노사 문제로 비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업계는 안 그래도 설계사를 늘리기보다 온라인 직접 가입을 확대하는 추세로 가고 있다. 고용보험 부담이 커지면 이 같은 경향이 강화될 것”이라며 “오히려 일자리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허동준 산업1부 기자 hung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