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능 역사상 최악의 문항은 2014학년도 ‘세계지리 8번’이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유럽연합(EU)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보다 총생산액 규모가 크다’는 보기를 정답으로 출제했다. 문제는 교과서의 기술과 반대로 NAFTA가 더 크다는 데 있었다. 평가원은 교과서에 맞는 답만 정답으로 채점했다가 법원이 오류를 인정하자 ‘오답’을 적어낸 1만8800여 명도 정답 처리하고 추가 합격 등 구제 조치를 했다. 이후 수험생 94명이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 2심에선 1인당 위자료 200만∼1000만 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이 나왔고 대법원 재판이 진행 중이다.
▷올해는 ‘한국사 20번’으로 시끄럽다.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려는 노력도 북의 호응으로 큰 진전…’이라는 연설문을 제시한 후 이 연설이 행해진 정부의 정책을 고르는 5지선다형이다. 그런데 1∼4번은 ‘당백전 발행’ ‘도병마사 설치’ ‘노비안검법’ ‘대마도 정벌’로 고려나 조선시대 정책이고 정답인 5번만 현대사인 ‘남북 기본 합의서 채택’이어서 “초등학생도 풀겠다” “수능이 장난이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정부의 대북정책을 홍보하는 문제라는 비판도 있는데 해당 내용은 노태우 전 대통령의 연설이다.
▷영국의 BBC방송은 최근 ‘한국: 인생을 바꾸는 시험은 팬데믹에도 멈추지 않는다’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수능을, 신기하다는 시선을 담아 보도했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대규모 시험을 치른다는 것 자체가 큰 도전이었다. 미국과 프랑스는 수능에 해당하는 SAT와 바칼로레아를 취소했고, 영국은 A레벨 시험 대신 모의고사와 내신성적을 바탕으로 알고리즘을 이용해 성적을 매겼다가 공정성 논란에 휩싸였다. 올해도 수능 출제가 제대로 됐는지 냉정하게 따져봐야겠지만 코로나 대유행 속에서 별 탈 없이 큰 시험을 치러낸 것만큼은 평가해야 한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