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 5월 11일
플래시백
동아일보는 지령(紙齡·신문 나이) 1000호가 되는 1923년 5월 25일을 앞두고 5월 4일자 2면에 ‘1000호 기념-상금 1000원의 대 현상’이라는 제목의 큼지막한 알림을 실었습니다. 무기정간을 당한 때를 빼고는 주말에도 쉬지 않고 신문을 만든 지 3년 여, 역사적인 1000호 발행을 기념해 총상금 1000원을 걸고 15개 분야에 걸쳐 현상공모를 한 겁니다. 신춘문예와는 좀 달랐던 게 단편소설, 각본, 동화, 시조 외에 각 지방의 전설, 향토 자랑, 우리 어머니, 가정 개량과 같은 분야까지 망라했죠. 편집국에 답지한 원고는 25일자부터 차례차례 소개됐습니다.‘오늘날 정치의 엄정 비판’이라는 분야도 포함됐는데 교육, 세무행정, 감옥제도, 조선인 차별, 인권유린 등 10가지 항목에 대한 불만을 실례를 들어달라고 했으니 사실상 총독부의 비정(秕政) 고발을 호소한 것이었습니다. 마산의 김국홍은 잎담배 농사를 짓는 친지가 담배를 청하는 이웃 노파에게 부스러기 담배를 줬다가 발각돼 소를 팔아 과태료를 낸 일을 기고했고, 익명의 독자는 아무리 위중한 병이라도 ‘아’(입을 벌리라는 말)와 ‘요시’(‘좋아’라는 뜻의 일본말)만 되뇌는 교도소 의사의 불친절을 고발했습니다.
세 차례 더 알림을 내보낸 뒤 5월 10일부터 투표지를 접수했는데, 11일자 3면에 실린 ‘현대인물 투표-대 환영의 신 시험’은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전에 도무지 없던 초유의 일일 뿐 아니라 흥미가 극히 많은 새로운 실험이라…어디를 가든 이 인물투표가 반드시 화제가 된다.’
1923년 동아일보가 실시한 ‘현대인물 투표’ 첫날 집계 결과 1~5위를 차지한 인사들. 시계 방향으로 이승만(49표), 최린(25표), 안창호(22표), 서재필(17표), 최남선(18표). 훗날 변절한 이들도 있지만, 당시에는 민족을 대표하는 독립운동가들이었다. 일제는 ‘치안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부랴부랴 이를 발표하지 못하게 했고, ‘조선 초유의 새 실험’도 중단되고 말았다.
훗날 변절해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 등을 지내며 친일활동을 한 최린과 최남선, 해방 후 독재로 지탄을 받은 이승만도 상위권에 올랐지만 1923년 당시로서는 민족을 대표하는 지도자 감으로 손색이 없는 인사들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지명도가 떨어지는 이춘재는 청년운동에 앞장선 활동가였고, 강일성은 부유한 집안 태생이었지만 인력거꾼으로 취업한 뒤 노동운동에 헌신했죠. 윤상은은 영남 최대의 민족계 은행인 경남은행을 일으킨 실업가, 신흥우는 1952년 대통령후보로 나서기도 했던 교육가이자 정치인이었습니다.
3·1운동 후 이른바 문화정치를 표방하며 실제로는 민족분열책을 획책하던 총독부로서는 조선 민중이 뭉치는 것을 무엇보다 경계했습니다. 그래서 “치안에 방해된다”며 기사를 삭제하고 마침내 투표도 무산시키고 말았죠.
정경준 기자 news91@donga.com
원문
現代人物投票(현대인물투표)大歡迎(대환영)의 新(신) 試驗(시험)
자미잇는 인물투표의 시작
본월 이십오일에 본보 창간 뎨 일천 호 되는 것을 긔념하기 위하야 상금 일천 원을 걸고 각종의 원고와 인물투표를 모집하는 일이 한번 발표되매 각 방면의 환영이 매우 성대하야 매일 각종의 원고가 편집국의 책상 우에 산가치 싸이는데 그 중에도 특별히 현대인물투포(現代人物投票·현대인물투표)는 이전에 도모지 업든 일이 될 뿐 아니라 흥미가 극히 만흔 새 시험이라 하야 일반 사회에서 긔대가 심히 간졀한 고로 요사이 어느 곳에를 가든지 이 인물투표가 반드시 리약이거리가 되는데 십일 정오까지 본사에 도착한 뎨일회의 투표 결과는 아래에 긔록한 바와 가치 실로 현재 조선인 중에 각 방면을 모도 망라하야 진실로 흥미가 매우 진진하며 이전 우표를 부처서 투표지를 청구하는 사람의 수효도 날로 만하간 즉 날자가 지나감을 따라서 여러 가지로 의외의 변동이 잇슬 것이라 위선 명일의 투표 상황은 또 엇더케 변할는지.
第一會(제일회)(十日 正午·십일 정오까지)
□□□□□
자긔가 자긔를 투표한 것은 채용치 아니하며 동아일보사(東亞日報社·동아일보사)에 관계잇는 사람을 투표한 것은 주최자의 처디에 잇는 관계로 일톄 채용치 아니함니다.
현대문
현대인물투표큰 환영을 받는 새 실험
재미있는 인물투표 시작
이달 25일 맞는 본보 창간 제1000호를 기념하기 위해 상금 1000원을 걸고 각종 원고와 인물투표를 모집한다는 일이 한번 발표되자 각 방면의 환영이 매우 성대해 매일 각종의 원고가 편집국 책상 위에 산 같이 쌓이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현대인물투표는 이전에 도무지 없던 초유의 일일 뿐 아니라 흥미가 극히 많은 새로운 실험이라 일반 사회의 기대가 심히 간절해 요새 어디를 가든 이 인물투표가 반드시 화제가 되는데,
10일 정오까지 본사에 도착한 제1회 투표결과는 아래에 기록한 바와 같이 실로 현재 조선인 가운데 각 방면을 모두 망라해 진실로 흥미진진하며, 우표를 붙여 투표지를 달라하는 사람의 수도 날로 많아져 시일이 지남에 따라 여러 가지 의외의 변동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내일 투표 상황은 또 어떻게 변할지.
제1회(10일 정오까지)
□□□□□
투표인 주의!
자기가 자기를 투표한 것은 채용하지 않으며, 동아일보사와 관계있는 사람을 투표한 것도 동아일보사가 주최자의 처지에 있는 관계로 일절 채용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