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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장인 A씨는 간편식(HMR)을 살 땐 ‘CJ더마켓’ 앱에 접속한다. 야채나 과일은 ‘마켓컬리’에서 사고, 옷은 좋아하는 브랜드 전용 앱에서 쇼핑한다. A씨는 “예전엔 쿠팡, G마켓에서만 쇼핑했지만 지금은 좋아하는 브랜드만 골라 전용 앱에서 산다”며 “가끔 생필품만 오픈마켓에서 주문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쏘아 올린 공이 유통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온라인 전성시대’를 불러온 언택트 현상을 넘어, 제조사가 오픈마켓이 아닌 자사몰을 키워 직접 상품 판매에 나서는 ‘D2C’(Direct To Consumer·소비자 직거래) 시장이 커지고 있다.
‘D2C’는 제조사가 상품을 만들고, 유통업체가 판매하는 기존 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린다. 과거 오픈마켓 파워에 의존했던 제조사들이 자체 온라인쇼핑몰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애플리케이션을 한번 터치하면 즉시 자사몰에 접속할 수 있는 ‘모바일 쇼핑 환경’도 이같은 현상을 가속화하고 있다.
D2C 공략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나는 분야는 식품업계다.
6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야쿠르트는 오는 15일 첫 통합 온라인몰 ‘프레딧’(Fredit)을 출범한다. 주력이었던 유제품·건강기능식품·신선식품을 넘어 라이프스타일 상품 전반을 다루는 종합유통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구상이다.
프레딧은 유제품, 신선식품, 건강기능식뿐만 아니라 화장품, 리빙, 유아용품 등 친환경 생활용품을 모두 다루는 종합 쇼핑 플랫폼이다. 품목도 ‘프레딧 푸드’는 250여종, ‘프레딧 라이프’는 400여종으로 비식품 상품이 훨씬 많다.
한국야쿠르트가 신성장동력으로 ‘종합쇼핑몰’을 꺼내들 수 있었던 것은 두터운 ‘충성고객층’ 덕분이다. 현재 한국야쿠르트의 모바일 신선마켓 하이프레시 회원은 95만명 수준이다. 여기에 발효유와 유제품을 구독 중인 이용자(150만명)를 더하면 고객 규모는 약 250만명으로 늘어난다. 이들을 프레딧 회원으로 유치하면 자사몰로도 충분한 고객층을 확보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번 개편안의 골자는 ‘멤버십 혜택 강화’다. 달마다 직접 결제해야 했던 회원비를 자동 결제로 전환하고, 매달 8회 한정 5% 추가 할인 제한을 ‘무제한 7% 할인’으로 대폭 강화했다. 더프라임 회원은 월 3회 무료 배송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CJ더마켓도 수백만명에 달하는 ‘충성고객’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150만명 수준이었던 회원 수는 현재 260만명으로 100만명 넘게 늘었다. CJ제일제당은 CJ더마켓 연매출이 700억원으로 전년(500억원) 대비 40%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한섬, 공식몰 한 채널로 매출 1000억 넘겨…LF·휠라 공식몰 매출 ‘껑충’
패션업계도 ‘D2C 키우기’가 한창이다. 업계 선두주자인 한섬과 LF는 수년 전부터 자체 쇼핑몰에서만 상품을 팔거나 종합쇼핑몰로 사업을 확대하는 등 D2C 마케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주목할 점은 ‘큰 손’인 VIP(우량고객) 회원과 매출이 더 큰 폭으로 성장했다는 점이다. 전년 동기 대비 VIP 매출은 128%, VIP 회원 수는 112% 껑충 늘었다. 오직 ‘더한섬닷컴’, ‘H패션몰’ 2개 자사몰에서만 제품을 판매하는 폐쇄적인 온라인 유통 정책에도 한섬을 찾는 고객이 더 많아진 셈이다. 구매력이 큰 2030 VIP 회원 비중이 56%라는 점도 긍정적인 신호다.
한섬은 기세를 몰아 경기도 이천에 온라인 전용 물류센터 ‘스마트온(Smart-On) 센터’를 건립하며 D2C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2022년 완공되는 스마트온센터는 한섬의 온라인몰 주문 물량을 전담할 예정이다. 연간 처리 물동량은 1100만건으로 기존 이천 통합물류센터보다 하루 평균 4시간 빠른 배송이 가능하다.
패션기업 LF도 자사몰 ‘LF몰’을 종합 쇼핑몰로 키우고 있다. 현재 LF몰이 취급하는 브랜드는 6000여종으로 지난해(4500여종)보다 33.3% 늘었다. SI나 코오롱 등 자체 브랜드 상품 외에도 패션·뷰티·리빙을 망라한 라이프스타일 상품을 선보이며 경쟁력을 높였다.
휠라도 2017년부터 온라인 공식몰에서만 살 수 있는 전용 컬렉션을 별도 론칭하는 등 자사몰에 힘을 주고 있다. 공식몰 누적 매출도 올해 11월 기준 전년 대비 50% 가까이 신장하며 효과를 톡톡히 봤다.
◇“비용 줄이고 빅데이터 수집하는 ‘D2C’가 뜬다”
업계와 전문가들은 제조업계의 ‘D2C 전략’이 더 빠르고 넓게 확산할 것으로 전망한다. 코로나19 여파로 ‘비대면 수요’가 크게 늘면서 온라인 쇼핑인구가 전례없이 많아졌고, 자사몰이 스스로 클 수 있을 고객층을 확보했다는 분석에서다.
코로나19 이전까지 오픈마켓은 온라인 시장에서 절대적인 갑(甲)으로 군림했다. 압도적인 고객층과 마케팅 노하우, 한 플랫폼에서 여러 상품을 검색·비교할 수 있는 편의성 때문에 시장 상품은 모두 오픈마켓에 집중됐다.
하지만 코로나19 시대가 도래하면서 흐름이 반전됐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제조업체는 만들고, 유통업체가 판다’는 공식이 분명했지만, 이제는 그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며 “이론적으로 제조업체가 상품 판매를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독일 가전업체 밀레(Miele)가 최근 자체몰을 만들어 직접 판매에 나선 점도 같은 맥락”이라고 풀이했다.
제조사 입장에서도 고객층이 확보된다면 오픈마켓보다 자사몰에 집중하는 것이 이득이다. 오픈마켓에 지급하는 판매 수수료나 인건비 등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어서다. 오픈마켓과 조율하지 않고 가격 조정이나 할인 행사를 할 수 있는 자율성도 보장된다.
제조사가 직접 소비자 빅데이터를 수집·분석할 수 있다는 점도 D2C의 장점이다. 안재호 CJ대한통운 최고전략책임자는 지난달 이베스트투자증권이 운영하는 유트브 채널 ‘이리온 스튜디오’에 출연해 “미래 이커머스 시장은 쇼핑 빅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자가물류 플랫폼이 주도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상품 판매를 넘어 소비자의 선호도와 구매 패턴 등 ‘쇼핑 빅데이터’를 수집·분석하는 기업이 미래 온라인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D2C의 대표적인 성공 모델로 스포츠패션기업 ‘나이키’를 꼽으면서 “나이키는 상품의 50%를 D2C로 유통한다”며 “직접 채널을 운영하면서 데이터를 얻고, 이를 신제품 개발 등에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대다수 제조사는 당분간 오픈마켓과 자사몰을 동시에 키우는 ‘B2B-D2C 투트랙 전략’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한 업계 관계자는 “시장 환경과 소비자 패턴이 변하면서 D2C를 육성하는 제조사가 크게 늘었다”면서도 “하지만 아직 오픈마켓 매출 비중이 압도적인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오픈마켓과 자사몰을 함께 강화하면서 ‘언택트 특수’를 극대화하는 전략이 합리적”이라며 “값싼 가성비 상품은 오픈마켓에서, 프리미엄 상품은 자사몰에서 판매하는 등 다양한 마케팅 시도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울=뉴스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