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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조직적 증거인멸 인정된 원전수사에 더는 시비 말라

입력 | 2020-12-07 00:00:00


월성 1호기 원자력발전소 조기 폐쇄 결정과 관련해 청와대 보고 문건 등을 삭제하는 데 관여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 2명이 4일 구속됐다. 지난해 12월 감사원 감사관과의 면담 하루 전날인 일요일 밤늦게 사무실로 나와 관련 문건 파일 444개를 무더기로 삭제한 행위에 대해 법원이 조직적인 증거인멸 가능성이 높다고 인정한 것이다.

그동안 여권은 감사원 감사에 이은 검찰의 원전 수사에 대해 “검찰이 정부 중요 정책에까지 손을 대려는 심각한 검찰권 남용행위”라며 크게 반발해왔다. 그러니 검찰개혁을 더욱 강력히 밀고 나가야 하며, 검찰권 남용을 주도하는 윤석열 검찰총장은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여권의 인식은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내걸었고 취임 이후 중요 정책으로 추진한 탈원전정책을 이른바 ‘정치검찰’이 앞장서서 훼방을 놓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부 공무원 2명의 구속 사유는 정부 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생산된 중요 문서들을 함부로 파기하고 감사원 감사를 방해하는 범법행위를 저질렀으며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검찰 수사는 감사원이 감사과정에서 확인한 문건 파기 행위 등을 수사 참고자료 송부 형식으로 사실상 수사의뢰를 함으로써 시작됐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 담겨 있기에 휴일 한밤에 서둘러 대량으로 문건을 파기했는지, 그 배후에 누가 있는지 조사해 확인하는 것은 감사원이든 검찰이든 사정기관으로서는 당연히 해야 할 책무다.

대통령 공약이든 중요 정책이든 법의 테두리 안에서 적법하게 추진하는 것이 바로 법치다. 대선 승리로 국민의 뜻이 실린 공약을 이행하는 정부 핵심 정책이니 불법행위가 있어도 털끝 하나 건드리지 말고 묵과하라는 인식이야말로 정치권력이 사법을 덮으려는 법치 훼손 행위다.

심지어 여권 일각에선 법원의 영장 발부에 대해서까지 ‘사법권 남용’이란 말이 나왔다. 민주당 우원식 의원은 그제 페이스북에 “정권을 궁지에 몰아넣기 위한 감사원, 검찰의 행태에 법원까지 힘을 실어준 것은 참으로 유감”이라며 이를 사법권 남용이라고 비난했다. 정권의 뜻에 거스르면 감사원이든 검찰이든 법원이든 매도부터 하는 편 가르기식 진영논리다. 최근의 민심 이반은 민주화세력을 자처하는 여권이 도리어 민주주의의 기본인 법치를 외면하는 행태에서 비롯된 것이다. 자꾸만 검찰 수사에 어깃장을 놓으려 할 게 아니라 정책의 정당성과 불법행위를 구분할 줄 아는, 집권세력다운 모습을 보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