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한숨 깊은데 ‘秋-尹 대립’ 심화 집권세력 꿈꾼 세상 과연 무엇이었나 정체성에 충실해야 잊혀지지 않을 것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최근 여론조사 결과는 문재인 대통령과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급격하게 빠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제 우리는 세월호 참사조차 그 책임을 해경과 종교집단에 돌리던 몰염치하고 무책임한 전(前) 정권과 대통령에 대한 분노의 기억 대신, 현(現) 정권과 대통령이 보여준 행보를 차갑게 평가하고 그 결과를 기억에 저장하기 시작했다. 검찰개혁이라는 시대적 소명에 아랑곳하지 않고 음침하고 비겁한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윤석열 총장과 검찰 조직이 저항해도 우리는 그전만큼 분노하지 않는다. 우리의 기억에서 더 분노할 대상을 찾았기 때문이다.
정치는 기억을 자양분으로 자라고 다시 태어난다. 정치가 기억의 재구성과 확산 없이 지지를 확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치는 정당한 기억에 대한 선점을 통해 대중이 같은 꿈을 꾸고 있다고 믿게 한다. 그래서 정치에 있어서 기억은 대중이 동정적 판단을 할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소구이며 유리하게 조작하고 선점해야 하는 대상이기도 하다. 정치는 끊임없이 기억할 소재를 찾아 평가하고 반성하고 분노를 확산시킴으로써 그 과정의 주체가 된 자신의 정당성을 강화한다.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명분 싸움에서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려면 기억의 전투에서 승리해야 한다. 하지만 승리한 기억조차 항상 망각의 위협에 시달리는 운명에 있다. 정당한 기억으로 자리 잡았던 일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불안정해지고 사라진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무섭게 증가하고 있다. 우리는 코로나19가 코앞에 와 있음을 감각하고 마스크를 눈에 최대한 가깝게 올려 쓴다. 소상공인의 한숨은 깊어간다. 아이는 학교 대신 집에 부모와 함께 다시 갇혔다. 이 와중에 추미애와 윤석열만 들린다. 대통령이 검찰총장 징계의 절차적 정당성을 강조하고 국토교통부 장관을 교체하며 반전을 노리지만 사라지기 시작한 기억에 생명을 불어넣기에는 이미 늦었다. 그렇다고 기억과 망각의 냉혹한 역사적 흐름에서 정당한 기억 편에 설 기회조차 사라진 것 같지는 않다. 한때 자신의 진짜 모습이라고 주장했던 정체성에 충실하면 돌파구가 열릴 수 있다. 망각한 자신의 모습부터 되살려야 한다. 자신들의 잘못으로 치르게 된 선거에서는 후보를 내지 않겠다 정한 당헌과 당규를 지키면 된다. 노동 존중의 사회를 만들겠다고 장담했으면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통과시키면 된다. 검찰개혁이 정말 하고 싶다면 공수처 출범에만 목맬 게 아니라 검찰을 통제하면서도 정치적 독립을 보장할 수 있는 제도를 내놓고 공론화하면 된다. 다 함께 잘 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면 차별금지법을 원래 취지에 맞게 통과시키면 된다. 아파트를 통한 부의 대물림을 차단하고 싶다면 실책을 인정하고 현장의 목소리를 더 듣고 더 설득하고 동의를 구하면 된다. 무엇을 하고 있나.
김석호 객원논설위원·서울대 사회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