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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참모들의 엑소더스… 짧은 권력의 씁쓸한 뒷모습[광화문에서/이정은]

입력 | 2020-12-07 03:00:00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알리사 페라 미국 백악관 전략소통국장의 사임은 지난주 워싱턴에서 주목받은 뉴스였다. 페라 전 국장은 마이크 펜스 부통령의 대변인, 국방부 대변인 등을 지내며 3년 넘게 트럼프 행정부의 메시지를 발신해온 주요 참모 중 한 명. 그런 그가 사임하는 것은 이른바 백악관 엑소더스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페라 전 국장은 조만간 정치와 국방 분야의 컨설팅 업체를 차릴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사퇴의 변에서 “지금까지 해온 훌륭한 일들이 굉장히 자랑스럽다”고 밝혔지만, 내년 1월 20일 공식 권력교체까지 아직 6주가 남은 상황에서 사표를 던지는 것을 보니 그다지 진실성 있게 들리지는 않는다. 더구나 그가 모셔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아직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황인데.

백악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태스크포스에서 활동해온 스콧 아틀라스 자문관도 비슷한 시기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는 의료전문가임에도 마스크 착용의 중요성을 폄하하고, 학교 문을 닫는 것에 대해 ‘히스테리’라고 불렀던 친(親)트럼프 인사였다. 지난달 국방부에서는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의 경질 이후 정책담당 차관, 정보담당 차관 등 고위 군 인사들이 잇따라 사임했다.

“주요 참모는 그래도 끝까지 남아 있어야 하는 게 아니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 당국자는 “어차피 한 달쯤 지나면 백수가 되는데 하루라도 빨리 트럼프 대통령과 거리 두기를 하고 새로운 직업을 찾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에 파견 근무 중인 또 다른 부처 당국자의 말도 비슷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직 대선 승리를 주장하고 있어서 대놓고 나갈 준비를 하기는 어렵지만 다들 물밑에서 다음 직장을 찾고 있는 눈치라는 것이다. 그는 “부처에서 파견된 공무원은 돌아갈 자리가 있지만 정무직 인사들은 줄줄이 백수가 될 처지”라며 “분위기가 뒤숭숭하다”고 전했다. 다들 비슷한 신세이다 보니 ‘배신’이라고 비난하기도 어렵다고 했다.

백악관 인사들의 탈출이 이어지면서 웨스트윙은 더 빠른 속도로 비어갈 것이다. 안 그래도 엉망인 트럼프 행정부의 레임덕도 가속화할 것이다. 그러나 생계가 걸린 이들에게 그게 무슨 대수랴. 각자도생의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이들이 노리는 곳은 주로 의회나 워싱턴의 싱크탱크, 컨설팅 회사라고 한다. 그것도 공화당 성향의 기관에 한정되는 상황이다. 업무 영역이 중복되는 동료들의 경쟁은 치열하다. CNN방송에 따르면 이런 자리들은 대부분 내년 1월이면 채용이 끝난다. 일부 참모는 ‘대통령의 불복 선언으로 더 좋은 일자리를 찾을 타이밍을 놓쳐버렸다’는 볼멘소리를 내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말까지 남아 있는 참모들은 대부분 트럼프의 충복이다. 언론의 매서운 비판과 들끓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그의 요구대로 무리한 정책을 밀어붙였던 이들이다. 거짓말과 궤변, 법질서를 무시한 각종 행정조치로 미국인들을 질리게 만들었던 인사도 적지 않다.

그렇게 쌓아온 말과 행동은 기록으로 남아 오랫동안 이들을 따라다닐 것이다. 이를 정당화해줄 권력의 달콤함은 결국 한순간이라는 것을 이들은 몰랐을까. 미국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