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페라 전 국장은 조만간 정치와 국방 분야의 컨설팅 업체를 차릴 계획이라고 한다. 그는 사퇴의 변에서 “지금까지 해온 훌륭한 일들이 굉장히 자랑스럽다”고 밝혔지만, 내년 1월 20일 공식 권력교체까지 아직 6주가 남은 상황에서 사표를 던지는 것을 보니 그다지 진실성 있게 들리지는 않는다. 더구나 그가 모셔온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아직 대선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상황인데.
백악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태스크포스에서 활동해온 스콧 아틀라스 자문관도 비슷한 시기 트럼프 대통령에게 사직서를 제출했다. 그는 의료전문가임에도 마스크 착용의 중요성을 폄하하고, 학교 문을 닫는 것에 대해 ‘히스테리’라고 불렀던 친(親)트럼프 인사였다. 지난달 국방부에서는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의 경질 이후 정책담당 차관, 정보담당 차관 등 고위 군 인사들이 잇따라 사임했다.
백악관 인사들의 탈출이 이어지면서 웨스트윙은 더 빠른 속도로 비어갈 것이다. 안 그래도 엉망인 트럼프 행정부의 레임덕도 가속화할 것이다. 그러나 생계가 걸린 이들에게 그게 무슨 대수랴. 각자도생의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이들이 노리는 곳은 주로 의회나 워싱턴의 싱크탱크, 컨설팅 회사라고 한다. 그것도 공화당 성향의 기관에 한정되는 상황이다. 업무 영역이 중복되는 동료들의 경쟁은 치열하다. CNN방송에 따르면 이런 자리들은 대부분 내년 1월이면 채용이 끝난다. 일부 참모는 ‘대통령의 불복 선언으로 더 좋은 일자리를 찾을 타이밍을 놓쳐버렸다’는 볼멘소리를 내놓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 말까지 남아 있는 참모들은 대부분 트럼프의 충복이다. 언론의 매서운 비판과 들끓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그의 요구대로 무리한 정책을 밀어붙였던 이들이다. 거짓말과 궤변, 법질서를 무시한 각종 행정조치로 미국인들을 질리게 만들었던 인사도 적지 않다.
그렇게 쌓아온 말과 행동은 기록으로 남아 오랫동안 이들을 따라다닐 것이다. 이를 정당화해줄 권력의 달콤함은 결국 한순간이라는 것을 이들은 몰랐을까. 미국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이정은 워싱턴 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