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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수 6억회 넘은 작품도… 팬덤 탄탄 ‘디지털 드라마’의 진화[인사이드&인사이트]

입력 | 2020-12-07 03:00:00

모바일 영역 넘어 플랫폼 확장




김재희 문화부 기자

“‘전지적 짝사랑 시점’(전짝시) 시리즈는 제작비의 수 배를 벌었어요. 오리지널 지식재산권(IP)의 생산성을 높여 백 배, 천 배의 매출을 내는 슈퍼 IP를 만드는 게 목표입니다.”(이민석 와이낫미디어 대표)

“저희 작품들은 서연고, 서연대 등 공통된 공간적 배경으로 세계관을 형성합니다. 콘텐츠가 연결성을 갖기에 팬덤이 더 확장되는 것이죠.”(박태원 플레이리스트 대표)

‘세계관 최강자’로 불리는 마블이나, 드라마 한 회에 수십억∼수백억 원을 쓰는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이야기가 아니다. 국내 콘텐츠 기업들이 만드는 디지털 드라마 이야기다. 유튜브에서 유통될 때는 웹 드라마로 불렸지만 최근 OTT, 방송채널까지 플랫폼이 확장되면서 디지털 드라마로 불린다.

2016년 설립 후 매년 5, 6개씩 30여 개의 오리지널 드라마 IP를 꾸준히 만들어 온 와이낫미디어는 디지털 드라마 최초로 누적 조회수 1억 회를 넘긴 ‘전짝시’(2016∼2017년), 두 시즌을 합친 누적 조회수가 1억5000만 회에 달하는 ‘일진에게 찍혔을 때’(2019년) 등 이른바 ‘대박’ 작품들을 탄생시켰다. 시즌4까지의 누적 조회수 6억 회를 넘긴 ‘연애플레이리스트’(연플리), 10대들의 ‘문화 대통령’ 역할을 하는 ‘에이틴’을 연달아 히트시킨 플레이리스트는 각 작품마다 연결되는 세계관을 기반으로 ‘러플리’라는 팬덤까지 만들어냈다.

유튜브를 중심으로 한 온라인 플랫폼에서 유통되는 디지털 드라마를 10분 내외로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스낵 컬처’로 표현하던 시대는 갔다. 2010년대 초반에 등장해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디지털 드라마는 속도감 있는 전개와 핵심에 집중한 서사, 탄탄한 팬덤을 기반으로 제2의 도약을 준비 중이다. 동영상 콘텐츠 소비 플랫폼이 TV에서 모바일로 전환되면서 디지털 드라마의 시청층은 10대에서 30대 이상으로, 러닝타임은 10분 내외에서 30분 이상으로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 세계관, 디테일까지… MZ세대 파고들다


디지털 드라마가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는 MZ세대를 파고든 핵심 요인은 모바일로 시청하기에 최적화된 ‘모바일향’ 콘텐츠를 발 빠르게 선보였다는 점이다. 모바일로 동영상을 볼 때 시청자는 TV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몰입감을 원한다. “TV는 틀어놓고 한눈을 팔기도 하지만 모바일로 동영상을 볼 땐 15초 광고에도 흐름이 끊겨 시청자가 거부감을 가질 정도로 몰입도가 중요하다”는 것이 신종수 카카오M 모바일콘텐츠본부장의 설명이다. 이를 위해 세운 원칙은 속도감과 핵심 줄거리에만 집중한 서사다. 디지털 드라마는 10분 내외의 콘텐츠 안에 기승전결의 서사, 마지막의 ‘클리프행어’(이야기의 절정에 마무리해 이후 전개를 궁금하게 만드는 기법)까지 모두 담긴다.

1157만 뷰를 기록한 일진에게 찍혔을 때 시즌1의 에피소드 1화는 8분 길이의 동영상 안에 여주인공이 자신에게 들이대는 남학생을 떼어내기 위해 온라인 속 남성의 사진을 소셜미디어 프로필로 거는데, 사진 속 주인공이 같은 학교의 일진임이 드러나기까지의 과정이 숨 돌릴 틈 없이 전개된다. 전짝시는 함께 밥을 먹거나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는 등 일상 속 평범한 상황에 놓인 남녀의 대화와 속마음 내레이션을 번갈아가며 보여준다. 등장인물은 남과 여 단둘, 내용은 둘 간의 속마음에만 집중한다. 이 대표는 “군더더기는 날리고 빠르게 진행한다. 서사구조에도 너와 나만 존재한다. 그나 그녀, 그들 등 관찰자 시점은 다루지 않는다”고 말했다.

빠르고 쉽게 진행되는 대신 완성도가 낮다는 것도 옛말이다. 범람하는 디지털 콘텐츠들 사이에서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하고 팬덤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실제보다 더 실제 같은 디테일과 세계관이 필요하다. 이를 가장 잘 활용한 곳은 플레이리스트다. 플레이리스트의 작품에는 서연고, 서연대, 카페리필 등 공통된 배경이 등장한다. 에이틴 주인공인 고등학생들이 연플리의 배경이었던 서연대에 지망하고, 이들이 방과 후 찾는 카페리필에서는 연플리 주인공들이 아르바이트를 한다. 플레이리스트의 콘텐츠를 접한 시청자는 자연스럽게 다른 콘텐츠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드라마 방영 직후 한국과 일본에서 팬 미팅이 열렸을 정도로 10대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를 끈 에이틴은 등장인물의 비주얼뿐만 아니라 성격, 제스처, 습관 등에 대한 ‘백문 백답’을 만들어 캐릭터 특징을 구체화했다. 박 대표는 “공감뿐만 아니라 동경의 감정까지 이끌어내 10대들이 따라 하고 싶게 만들고자 했다”며 “주인공 ‘도하나’가 ‘똑단발’을 하고 짝짝이 양말을 신는다든가 가끔 가방을 앞으로 메고 다니는 등 작은 부분까지 10대들의 이용률이 높은 커뮤니티를 조사하고 10대를 인터뷰해 캐릭터를 세밀하게 설정했다”고 했다.

○ ‘10대들만 보는 숏폼 학원물’은 옛말


온라인상에서 영향력을 갖게 된 디지털 드라마 제작사들은 기존 ‘웹 드라마=10대들이 보는 숏폼 학원물’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있다. 두드러진 변화는 ‘미드폼’으로의 확장이다. 기존에 5∼15분 분량의 ‘숏폼’이 주를 이뤘다면 25∼35분 분량의 미드폼 디지털 드라마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이 경우 콘텐츠가 실리는 플랫폼이 기존 유튜브, 네이버TV 등 모바일 플랫폼은 물론이고 레거시 미디어와 글로벌 OTT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

플레이리스트는 올해 1월 MBC와 러닝타임이 30분 내외인 ‘엑스엑스’를 공동 제작 및 동시 방영한 데 이어 이달 JTBC와 30∼40분 분량의 ‘라이브온’도 공동 제작해 동시 방영하고 있다. 와이낫미디어도 내년 글로벌 OTT와 손잡고 미드폼 드라마 제작을 준비하고 있다.

기존의 포맷을 뒤집는 시도도 활발하게 이뤄진다. 2018년 설립한 신생 디지털 콘텐츠 제작사 ‘플래디’는 결말이 3개로 나뉘는 ‘트리플썸’을 선보였다. 고등학생 여자 주인공이 썸을 타던 세 명의 남자 주인공과 각각 커플이 되는 세 가지 결말을 제작한 것이다. 댓글창에서는 ‘○○파’임을 밝히며 각자 응원하는 러브라인을 두고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플래디에서 디지털 드라마를 총괄하는 민린 팀장은 “시청자 선택에 따라 결말이 갈리는 ‘인터랙티브 콘텐츠’로 기획해 시청자들의 몰입감을 높였다. 남자 주인공 세 명에 대한 시청자들의 취향, 선호하는 결말 등을 고려해 세 가지로 결말로 나눈 새로운 시도”라고 했다. 자칫 뻔할 수 있는 로맨스에도 참신한 서사 형식을 가져온다. 채널A 디지털콘텐츠 채널 AYO에서 방영된 ‘여름아 부탁해’는 영화감독이 자신이 만든 영화 속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극 중 캐릭터들과 좌충우돌한다는 설정으로 주목받았다.

가성비 좋은 숏폼에서 웰메이드 디지털 드라마로 이미지가 옮겨간 콘텐츠는 자연스럽게 수익성 향상을 주도하고 있다. 기존에 드라마 형식으로 제품 및 기업을 광고하는 브랜디드 콘텐츠, PPL 등으로 수익을 냈던 디지털 드라마는 해외 유통으로 수익의 상당 부분을 회수하고 있다. 와이낫미디어와 플레이리스트는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미국 등의 온라인 플랫폼과 OTT에 콘텐츠를 유통하고 있다. 와이낫미디어는 상반기 작품의 경우 전체 매출에서 해외 판매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증가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 스타플레이어 합류로 불꽃 경쟁


국내 콘텐츠 시장의 메이저 플레이어까지 디지털 드라마 제작에 뛰어들면서 시장은 더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공격적으로 콘텐츠를 선보이는 곳은 카카오M이다. 김성수 카카오M 대표이사는 올해 7월 기자간담회에서 향후 3년간 디지털 콘텐츠에 3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그중 65∼70%는 디지털 드라마에 쓰인다. 카카오TV에 올라온 카카오M의 디지털 드라마 ‘연애혁명’은 매회 100만 회 안팎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고, ‘며느라기’ 1회는 일주일 만에 110만 회를 기록했다.

카카오M이 디지털 드라마 시장의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는 영역은 ‘스타플레이어’들과의 협업이다. 기존 디지털 드라마는 신인 작가와 PD, 배우들이 주축을 이뤘다면 카카오M의 디지털 드라마에는 유명 제작진과 배우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며느라기는 박하선과 권율이 주연을 맡았다. 8일 공개되는 ‘도시남녀의 사랑법’은 ‘로맨스가 필요해’ ‘연애의 발견’ 등을 쓴 정현정 작가가 각본을, ‘사이코지만 괜찮아’를 연출한 박신우 PD가 연출을 맡았다.

디지털 드라마의 형식, 러닝타임의 틀도 빠르게 깨질 것으로 보인다. 도시남녀의 사랑법은 회당 러닝타임 30분, 정우와 오연서가 주연을 맡은 ‘이 구역의 미친 ×’는 25분으로 제작된다. 김보통 작가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 ‘아만자’는 실사와 애니메이션이 결합된 구성을 드라마 최초로 선보였다. 신 본부장은 “지상파 인기 드라마와 맞먹는 수준의 분당 제작비를 투자해 스타급 감독, 작가, 배우들과 협업하고 있다. 10대 중심이었던 디지털 드라마의 타깃 연령층을 20, 30대로 넓히고 장르 역시 판타지, SF 등으로 확대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김재희 문화부 기자 j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