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정보기술(IT)기업 애플은 하드웨어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모두 혁신한 회사로 잘 알려져 있다.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회사를 나갔다가 최고경영자(CEO)로 복귀한 1997년에는 종업원 수 8000여 명, 매출 70억 달러(약 7조7000억 원) 규모였는데 2019년에는 종업원 13만7000명, 매출 2600억 달러(약 286조 원) 규모로 성장했다. 이런 애플의 성공 이면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조직 구조와 리더십 모델이다.
일반적으로 대기업들은 제품별 사업부로 나뉘어 있고 각 사업부는 자체적으로 이익과 손실에 대해 책임을 진다. 1997년의 애플도 그랬다. 매킨토시(PC) 사업부문, IT사업부문, 서버 사업부문 등으로 나뉘어 있었고 일반 관리자들이 각 사업부의 장을 맡았다. 이 사업부장들은 서로 경쟁했고, 자신이 관리하는 모든 분야에 대해 깊이 있게 알고 있기는 어려웠다.
잡스는 CEO 복귀 첫해 전 사업부장을 같은 날 모두 해고했다. 그리고 사업부마다 따로 운영했던 기능부서들을 하나로 통합했다. 즉, 그는 회사를 제품별 사업부로 나누는 게 아니라 디자인, 마케팅, 하드웨어 엔지니어링, 소매판매 등 기능(직능)별 부서로 나눴다. 또 각 분야의 전문지식을 보유한 직원에게 의사결정권을 줬다.
애플은 일반 관리자들이 하급 관리자들을 관리 감독하는 회사가 아니다. 전문가가 전문가를 이끄는 회사다. 관리자를 훈련시켜 전문가로 만들기보다는 전문가를 관리자로 훈련시키는 게 쉽다는 것이다. 따라서 하드웨어 전문가들이 하드웨어를 관리하고, 소프트웨어 전문가들이 소프트웨어를 관리한다. 잡스는 이렇게 말했다. “최고의 관리자는 어떤 관리자일까요? 관리자가 되길 한 번도 원한 적 없는 사람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신만큼 그 일을 잘할 것 같지 않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회사에 기여를 하는 사람입니다.”
경영학 조직 이론에 따르면 기업이 성장해 커지고 복잡해지면 기능별 조직에서 사업별 조직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우리는 알고 있었다. 책임과 통제 권한을 일치시키고, 수많은 결정사항들이 조직구조의 최상단까지 올라오면서 발생하는 정체를 방지하기 위해서다. 듀폰과 제너럴모터스 같은 미국 기업들은 20세기 초 기능별 조직구조에서 사업별 조직구조로 전환했다. 20세기 후반이 되자 대기업 대다수가 그 뒤를 따랐다. 그런데 애플은 엄청난 기술적 변화와 산업의 대격변을 마주하는 현대의 기업에는 오히려 기능별 조직구조가 유리하다는 것을 증명했다.
애플은 왜 사업부별에서 기능별로 조직구조를 바꿨을까. 애플은 한 분야에서 가장 많은 전문지식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해당 분야의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근본적인 신념을 지니고 있다. 전통적인 사업부별 조직의 기본원칙은 ‘책임’과 ‘통제권한’을 일치시키는 것인 반면 기능별 조직의 기본 원칙은 ‘전문지식’과 ‘의사결정권’을 일치시키는 것이다. 여기에는 두 가지 판단이 작용했다.
첫째, 애플은 기술 변화와 파괴적 혁신의 속도가 빠른 시장에서 경쟁한다. 따라서 기술에 대한 깊은 지식을 가진 사람들의 판단과 직관에 의존해야 한다. 성공할 것으로 보이는 기술과 디자인에 승부를 걸어야 하는 것이다.
애플의 조직 체계와 애플이 창출하는 혁신 사이에는 뚜렷한 연관관계가 있다. 애플은 조직구조에서도 전통적 접근방식은 불필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엄청난 기술적 변화와 산업의 대격변을 마주하는 기업들에는 기능별 조직구조가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을 일정 부분 증명했다.
이 글은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 한국어판 2020년 11-12월호에 실린 ‘애플의 혁신형 조직체계’ 기사를 요약한 것입니다.
조엘 포돌니 애플대 학장(전 예일대 경영대학원 학장)
모르텐 한센 애플대 교수 겸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