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종양 투병’ 김점용 시인 동료들이 미발표 시 등 48편 묶어 ‘나 혼자 남아 먼 사랑을…’ 출간 펜 쥐지 못해 ‘지장 사인’ 대신해
펜을 쥘 수 없는 김점용 시인이 자신의 시집에 찍은 지장.
어쩌면 시인의 ‘마지막’ 시집이 될지 모를 이 책의 시들은 신산했던 삶의 마디마디와 죽음에 대한 관조(觀照)를 때로는 차분하고 때로는 불안하게 담았다.
‘모든 별들이 살아 있는 죽음을 나르는 칠성판/영원히 사는 인생이 어딨어/내 머릿속의 별들도 조용히 제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혼자서 스스로의 장례를 치르며 두 팔을 활짝 벌리네’(‘스위스행 비행기’ 중)
경남 통영 출신이며 가정형편이 어려워 상고를 졸업하고 은행에 들어갔다. 그렇게 7년 만에 서울시립대 국문과에 입학했다. 대기업 홍보팀에서 일하다 1997년 계간지 ‘문학과 사회’에 시로 등단하고 문지시선에서 시집을 두 권 냈다.
대학원에 들어가 2003년 ‘서정주 시의 미의식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2008년 모교 도시인문학연구소 조교수가 됐다. 2012년 석연치 않은 ‘연구업적 부족’을 사유로 해임된 뒤 학교를 상대로 소송을 걸지만 패소한다. 그 심정을 시인은 ‘법원 앞마당은 자꾸 꿈틀거렸다/뱀장어가 발목을 감는다’(‘우나기’ 중)고 털어놓는다.
2013년 경북 청도에서 목수 일을 배워 한옥 목수로 일했다. ‘빈 술잔 속에 집터를 잡고/빗소리를 깎아 집을 세운다/세상에서 가장 크고 외로운 집/찬란히 들어’설 뿐이다.(‘술잔 속에 집을 짓다’ 중)
시인은 경기 수원시 아주대병원에서 ‘잘 못 보고, 잘 못 듣고, 잘 걷지 못하는 몸’으로 있다. 지인에게 보낸 시집 50부에는 서명 대신 그의 오른손 네 손가락이 찍혀 있다. 펜을 쥐지 못하는 시인의 손을 부인이 잡고 찍었다. 시인은 “여보, 이 시집은 당신 거야. 고마워”라고 ‘시인의 말’에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