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로 넘어가는 국정원 대공수사권
지민구 사회부 기자
2013년 3월 27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현 행정안전위원회) 회의장에선 간첩 신고 긴급 번호가 무엇인지를 두고 잠시 토론이 벌어졌다. 여야 의원들은 잠시 수군거리다가 출석한 경찰청 관계자들에게 질의하기도 했다.
실은 둘 다 정답이다. 111은 국가정보원이 운영하는 간첩·테러 신고센터이며, 113을 누르면 각 지방경찰청의 간첩신고센터로 연결된다. 간첩, 이적단체 등 국가보안법 위반 범죄에 대한 대공(안보)수사권은 정보기관인 국정원은 물론 경찰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야당과 일부 안보 분야의 전문가들은 이번 개정안을 두고 “대공수사 공백이 우려되고 경찰 권력이 지나치게 커질 것”이라며 반대했다. 반면 정부와 여당 등은 “정보기관과 대공수사권에 대한 민주적 통제를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견해다.
○ 해외공조·대공보안, 경찰도 가능할까
대공수사는 1961년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가 창설될 때부터 법에 명시된 정보기관의 핵심 임무다. 중앙정보부는 해외 정보수집 활동을 하는 미 중앙정보국(CIA)과 연방수사국(FBI)의 수사 기능을 통합한 형태로 운영됐다. 남북이 대치하는 특수 상황을 고려해 정보기관이 강력한 권한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던 것이다.국정원은 대공수사 임무를 적극적으로 수행하면서 ‘간첩 잡는 정보기관’이라는 이미지를 쌓았다. 국정원이 홍보하는 최근 대공수사 성과는 2011년 ‘지하당 왕재산 사건’과 2013년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 등이다. 특히 이석기 내란 음모 사건은 국정원 자체 홍보관 등을 통해 “3년에 걸친 내사를 통해 국회의원 등이 내란을 선동 중인 사실을 포착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야당 등은 이번 법 개정으로 대공수사에 특화된 국정원의 권한이 경찰로 넘어가면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안보 태세에 공백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두 번째는 ‘보안’이다. 비밀 임무를 수행하는 국정원은 조직원들이 자신을 외부에 드러내지 않는 ‘밀행’을 최우선 가치로 여긴다. 국정원에서 증명이 필요 없는 특수활동비 예산을 책정 받아 사용하는 것도 정보 수집이나 수사 흔적을 드러내지 않기 위함이다. 예민한 정보는 국정원 내부에서도 담당자나 극소수만 파악할 수 있다. 국회 출신의 한 안보 전문가는 “경찰은 보고 체계가 정보기관보다 복잡하고 조직이 크기 때문에 대공수사 과정에서 내밀한 정보가 유출될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했다.
사실 경찰도 대공수사 분야에서 국정원의 전문성과 특수성은 인정하고 있다. 다만 충분히 준비하면 큰 공백 없이 업무를 이어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경찰청이 올해 10월 국회 행안위에 제출한 현안 보고 자료에서 경찰은 ‘대공수사권 이관에 대비한 전문성 제고 방안’을 제시했다. 국정원이나 군사안보지원사령부와 대북 정보 등을 공유할 수 있는 ‘안보정보협의체’ 설립, 대공수사 전문가 육성을 위한 안보수사연구교육센터 신설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경찰 관계자는 “대공수사 영역에서 전문성을 키우길 원하는 인력이 상당히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정보기관이 주로 해온 중요한 업무를 맡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 만큼 책임감을 갖고 준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 커져버린 경찰 권한, 견제가 가능할까
이번 개정안이 통과하면 경찰 권력이 엄청나게 비대해진다는 점은 여야를 막론하고 우려하는 대목이다. 국회 정보위 야당 간사인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은 지난달 30일 “경찰이 국내 정보를 독점하는 상황에서 (수사권을) 악용할 가능성이 커졌다”며 “5공화국 시대로 돌아가는 조치”라고 비판하기도 했다.행안위 소속 야당 의원실 관계자는 “인사 청문회도 거치지 않는 경찰청 산하의 국가수사본부장에게 각종 일반 수사뿐만 아니라 대공수사 지휘 및 감독까지 맡기는 것은 과도하다”고 짚었다.
야당과 시민단체들은 내년 1월부터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인 개정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이 시행된다는 점도 우려하고 있다. 가뜩이나 경찰의 수사 독립성이 커지는데 대공수사까지 전담하면 ‘막강한 권한’을 쥐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실제로 검경수사권 조정에 따라 경찰은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지 않고 1차 수사를 종결할 수 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을 지낸 양홍석 변호사는 “경찰에 대한 민주적 통제와 권한, 기능 분산을 전제로 하고 대공수사권을 넘기는 것이 맞다. 이러한 조치가 선행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찰의 힘만 키우면 부작용이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대해 정부와 여당은 경찰법 개정으로 경찰 조직을 크게 3개의 체계로 분리해 운영할 예정이기 때문에 충분히 권한 분산과 견제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3일 국회 행안위 전체회의에서 의결된 경찰법 개정안에 따르면 국가경찰은 경찰청장, 자치경찰은 시도자치경찰위원회, 수사경찰은 2년 임기의 국가수사본부장의 지휘·감독을 받는다. 권한이 경찰청장 1인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한 것이다. 경찰법 개정안도 9일 국회 본회의에 상정될 예정이다.
이 정도로는 여전히 경찰 견제 장치가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국회 행안위 소속 정의당 이은주 의원은 “행정안전부 산하의 경찰위원회를 독립적 합의제 기관으로 격상해 경찰에 대한 실질적 민주적 통제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이번 경찰법 개정안에는 이러한 취지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경찰 측은 이러한 평가에 대해 “앞으로 공론화 과정을 거쳐 경찰청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가능하도록 경찰위원회를 실질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 대공수사 이관 기간 적극 활용해야
물론 정보기관의 권한을 축소하려는 여당의 입법 추진은 국정원이 자초한 측면도 있다. 대공수사와 관련해 국정원의 사건 증거 조작, 불법 구금, 변호인 참여 제한 등의 문제가 잇따라 제기돼왔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정보기관 개혁 주장에 힘이 실렸다.이재근 참여연대 권력감시국장은 “검찰과 경찰도 강압 수사, 인권 침해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지만 시민단체 안팎에선 가장 폐쇄적이고 비밀스러운 국정원이 대공수사권을 갖는 것보다 다른 수사기관으로 넘기는 게 낫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전했다.
사실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넘기는 국정원법 개정안의 9일 국회 본회의 통과는 이미 확정적이다. 민주당이 절반을 훌쩍 넘는 174석을 확보하고 있는 만큼 결과가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다.
문제는 과정이다. 정부와 여당이 국정원법 개정안 등을 심의하고 의결하는 과정에서 야당과 각 기관, 시민단체의 의견을 제대로 수렴하지 않았다는 지적은 두고두고 문제가 될 수 있다. 여당 의원들은 국회 정보위 전체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전원 퇴장한 가운데 국정원법 개정안을 단독 처리했다.
대공수사권의 완전한 이관은 앞으로 3년이란 시간이 남았다. 이 기간 동안 국회는 보완 입법을 진행해야 한다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대공수사를 국정원의 업무와 역할로 규정한 정부조직법을 개정해야 하며, 경찰법도 추가로 정비할 필요가 있다. 경찰과 국정원도 상호 협력 체계를 구축하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대공수사는 혼란만 가중돼 큰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최미경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3년이라는 시간도 결코 길다고 볼 순 없다. 여야와 각 기관이 효율적인 논의를 통해 시급하게 보완책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지민구 사회부 기자 waru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