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계속 봐달라고 사정하는데 우리도 어쩔 도리가 없어요.”
8일 오전 11시경 서울 중구에 있는 한 영어유치원.
이날부터 원생들의 등원이 중지된 이곳은 유치원 교사들만 모여 대책회의를 하고 있었다. 한 교사는 “정부 입장에선 어쩔 수 없다지만, 수시로 방역지침이 바뀌니 너무 힘들다”며 “금전적 손해는 둘째 치고 학부모 원성에 정신적 스트레스가 심각하다”고 하소연했다.
●갈 곳 없는 아이들, 애타는 학부모
동아일보가 이날 서울 중구와 마포구, 성동구에 있는 놀이학교 및 영어유치원 등 10곳을 살펴봤더니, 모두가 방역수칙을 따라 문을 닫으면서도 볼멘소리가 거셌다. 중구에서 원생 60여 명 규모의 영어유치원을 운영하는 A 원장(55)은 “원생들의 대다수 학부모들이 맞벌이라 갑작스런 조치에 어제부터 ‘멘붕’에 빠졌다”며 “공부 안 시켜도 좋으니 다만 며칠이라도 맡아만 달라고 사정하는데 사정 설명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전했다.너무 방역수칙이 자주 바뀌는 탓에 대응하기가 힘들었단 불만도 있었다. 성동구에 있는 한 놀이학교의 교사는 “처음부터 강력한 결정을 내렸으면 일일이 대처하느라 애먹지도 않았을 것”이라며 “찔끔찔끔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더 힘이 들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한 영어유치원 측도 “최근 ‘천만시민 멈춤 기간’ 수칙에 따라 상당한 비용을 들여 모든 좌석에 칸막이를 설치했다”며 “며칠 되지도 않아 문을 닫으라고 하면 이 손해는 누가 보상해 주느냐”고 항의했다.
가장 힘든 건 아이들과 부모들이다. 경기 수원에 사는 조모 씨(31)는 3세 자녀의 놀이학교 휴원에 어쩔 수 없이 회사에 휴가를 냈다. 조 씨는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은 원생을 받게 하면서, 같은 목적의 시설인 놀이학교 등은 안 된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다”며 “회사에서 휴가를 허용하면서도 영 마뜩찮은 눈치라 이래저래 힘이 든다”고 말했다. 서울 송파구에서 자녀들을 키우는 B 씨(35)는 “영어유치원이 모두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한다는데 그럼 뭐하러 다니나 싶어서 관둘까 고민 중”이라며 한숨지었다.
●카페 이용 못하게 하니 다른 데 몰려
대다수 다중이용시설이 이용을 제한하고 있지만, 틈새는 남아있다. ‘스터디 카페’나 ‘만화 카페’ 등은 고객이 머물 수 있는 업소들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은 이름만 카페일 뿐 휴게음식점이 아닌 일반관리시설로 분류돼있다. 오후 9시 영업을 중단하긴 하지만 이전까지는 맘대로 머물 수 있단 뜻이다.신촌에 있는 한 만화 카페도 평소보다 훨씬 북적거렸다. 만화를 보는 장소에서 노트북 작업을 하고 있던 대학생 C 씨(26)는 “기말과제 기간인데 도서관 등 학교 시설은 문을 닫고 스터디 카페는 만석이라 어쩔 수 없이 여기 왔다”고 말했다. 이날은 마침 연세대에서 논술고사를 시행해 1만여 명이 신촌에 몰리며 극심한 혼잡을 빚기도 했다.
정기석 한림대성심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방역기준을 지키되 현장에서 나타나는 부작용을 고려해 유연하게 조정해야 한다”며 “방역구멍을 막기 위한 현장 단속과 점검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영어유치원 논란은 바로 기준과 현장의 괴리로 생기는 부작용”이라며 “정책의 신뢰성을 위해서라도 방역 조치의 적용을 세심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지환 기자 jhshin93@donga.com
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